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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5-04 19: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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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순 의병장 순국지 - 연곡사
  • 온바오 20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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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순 의병장 순국지 - 연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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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고광순 의병장 순국지 - 연곡사
  • Gurye Yeongoksa Temple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전남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806-16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262.0km
고광순 의병장 순국지 - 연곡사(호남 의병의 선봉장, 피아골의 붉은 단풍으로 지다) ... 개항 이후 침략을 계속적으로 자행하던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보호국으로 만들었다. 1907년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며 저항하는 광무황제(고종)를 황제자리에서 강제로 끌어내리고 이어 정미7조약을 체결한 후, 8월에는 대한제국군의 무장을 해제시켰다.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한국군을 강제로 해산시키는 데 보름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일제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고 그 수순에 따른 것임을 알게 해 준다.
정미7조약이 노린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한국군을 해산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 주권의 핵심인 군사권을 탈취하려 했던 것이다. 1907년에는 군대해산과 광무황제 퇴위 등을 강요함으로써 한국의 정치적 예속화를 기도하였다. 경제적으로도 일본상품의 대량유입과 금융시장의 지배를 위한 계획이 진행 중에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토지점탈과 수산자원의 확보를 위하여 일본 농어민의 대량이주가 적극 추진되고 있었다. 특히 일본 농어민들의 대량 이주는 한국 농어민들의 토지와 어장을 빼앗는 또 다른 형태의 직접적인 경제 침략이었다.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지리산의 피아골 입구에 있는 연곡사는 544년 백제 성왕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불탄 것을 이후 다시 세웠으나, 1908년 일제의 토벌 작전으로 연곡사는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 사라졌다. 이후 1924년 박승봉이 심우암을 창건했으나 한국전쟁 당시 피아골 전투로 다시 불에 타 폐사 되었는데, 1965년 소규모의 대웅전이 세워졌고, 1983년에 대적광전과 관음전을 지어 현재의 모습을 조금씩 갖추게 되었다. 연곡사의 경내에는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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