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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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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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이인영 생가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경기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37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64.2km
이인영 생가(13도 창의대장으로 서울진공작전을 지휘하다.) ... 905년 을사늑약의 체결 이후 일제의 침략은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되었다. 1907년 헤이그 특사의 파견을 빌미로 고종을 퇴위시키고 군대마저 해산시켰을 때 우리 민족은 일제에 맞서 더욱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항쟁을 벌였다. 그 중 가장 빛나는 투쟁은 의병전쟁이었다.

1907년 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해산군인을 흡수한 의병전쟁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맞게 된다. 군대해산은 의병항쟁의 불길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전국 각지에서 고립적이고 외로운 항일투쟁을 전개해왔던 의병들은 해산 군인의 합류와 무기의 사용으로 전투력이 향상되었다.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투쟁방안을 전혀 새롭게 전환시켜갔다. 무엇보다 먼저 이들은 각기 고립적으로 투쟁해왔던 방법에 대한 반성을 하였다. 비록 주변 지역에서 활동하는 의병들과 연합투쟁을 전개하거나 시도한 경우도 있지만 이때부터 도의 경계를 넘어서서 의병진영 간의 연합이나, 연계하는 투쟁 전략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평안도와 황해도 그리고 경기도와 강원도 충청북도 등지에서 활동하던 박기섭·김수민·김규식·허위·이인영·이강년·민긍호 등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연합항쟁을 모색하고 있었다. 도와 도를 연결하는 이러한 연락망의 구축은 전국적으로 통일되어 대규모의 의병연합부대, 즉 13도창의대진소를 결성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비로소 전국 각지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던 대표적인 의병부대를 하나의 통일된 체계를 갖춘 이른바 13도창의대진소의 결성이 이뤄지며 우리민족의 의병투쟁사에서 빛나는 성과를 달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