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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희 생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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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서병희 생가 터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경남 양산시 상북면 수서로 159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300.6km
서병희 생가 터(경남 의병부대의 지도자) ... 서병희는 서병권과 청주 한씨의 장남으로 양산군 좌삼리 97번지에서 태어났다. 13세까지 향리에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1887년부터 1891년까지 서울에서 한의학을 배우고 돌아와 1902년부터 향리에서 한의업에 종사하였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이를 한탄하고 1907년 2월 17일 서울로 올라갔다. 같은 해 7월 고종의 강제 퇴위가 발표되고 강태현, 송영근 등의 구국선언서와 국민결사대가 발족되는 등 전국의 우국지사들이 궐기하였다. 그 와중에 허위(許蔿) 의병장을 알게 되고 그의 부하가 되어 같은 해 10월 양주에서 13도창의군 결성에 참여하였다. 1908년 1월 13도 창의군의 서울탈환 작전에 허위의 결사대 300여 명의 선봉장으로 참여하였으나 일제의 선제공격으로 실패하고 허위의 밀지에 따라 경상남도에서 의병부대를 이끌고 활약하였다.

1908년 울산군 복안동에서 울산 수비대와 격전을 치룬 것 외에 경주군 산내면 저동에서 경주 일본군의 수비대와 교전하였다. 양산군 하서면의 이천산 속에서는 밀양 일본군 수비대의 공격을 받아 교전하였고, 양산군 하북면 성천 마을에 투숙한 일본인 상인을 습격하여 참살하였다. 이후 의병장 박동의의 부장이 되어 일군 수비대와 교전하였으며, 1909년에는 함안, 합천, 칠원, 창원, 고성, 진주, 의령 등지에서 크고 작은 교전과 습격을 통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1909년 10월 11일 밀고에 의해 오후 7시경 구마산 주재소 순사 2명에게 체포되어 향년 43세로 순국하였다.

국권 상실을 끝까지 막기 위해 의병부대를 이끌고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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