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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선언의 실질적 지도자-손병희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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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3․1독립선언의 실질적 지도자-손병희 생가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충북 청원군 북이면 의암로 234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103.1km
의암 손병희는 1861년 충북 청원에서 출생하였다. 1882년 22세 때 조카의 권유로 동학에 입교하여 3년 후에는 교주 최시형을 만나 수제자로서 수도에 전념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북접의 지도자로서 농민군을 이끌고 남접의 전봉준과 논산에서 연합하여 관군과 싸웠으나 일본군의 개입으로 실패하여 원산과 강계 등지로 피신하였다.
1897년부터 최시형의 뒤를 이어 교세 확장에 힘쓰다가 1901년 일본에서 이상헌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면서 오세창, 박영효 등을 만나 국내사정을 듣고 1903년에 귀국, 두 차례에 걸쳐 청년들을 선발하여 일본으로 데려가 유학시켰다.
1904년 권동진, 오세창 등과 개혁운동을 목표로 진보회를 조직한 후 이용구를 파견하여 국내에 회원 16만 명을 확보하고 전 모든 회원에게 단발령과 양복을 입게 하는 등 신생활운동을 전개하였다.
1906년 동학을 천도교(天道敎)로 개칭하고 교세 확장운동을 벌이는 한편, 출판사인 보성사를 창립하고 보성, 동덕 등의 학교를 인수하여 교육·문화사업에 힘썼다. 1908년 교주 자리를 박인호에게 넘기고 우이동에 숨어 살며 수도에 힘쓰다가 1919년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3·1운동을 주도하고 경찰에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이듬해 10월 병보석으로 출감하여 치료 중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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