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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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대학 건물 - 김성숙 활동지(베이징제2실험소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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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 10-62914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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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北京第二实验小学
  • Běijīng dì èr shíyàn xiǎoxué
    분류
  • 학교/학원/도서 > 초등/중등/고등학교
    주소
  • 베이징 베이징 시청구 新文化街第二实验小学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955.6km
김성숙이 북경에서 다녔던 학교 ... 김성숙(1898~1969)은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출생하고 출가하여 승려가 된 후 경기도 고양군으로 전적하였다. 1919년 3월 경기도 남양주군 봉선사의 승려로 있을 때 같은 승려인 이순재 등과 함께 비밀리에 독립문서를 만들어 일반 대중에게 살포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라는 명의로 동료들과 함께 격문을 만들었다. 이 격문의 취지는 파리강화회의에서 12개국이 독립국이 될 것을 결정하였으므로 조선도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열심히 독립운동을 하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으로서 그들은 약 200매 정도를 작성하여 인근 동리에 살포하였다.
이 독립문서의 살포사건으로 그는 동지들과 함께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그는 봉선사로 잠시 되돌아갔으나 곧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그는 1920년 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는 계기를 이용하여 조직된 합법적 단체인 무산자동맹 노동공제회에 참석하였다. 노동공제회에서의 그는 충북 괴산에서 일어난 소작쟁의의 진상을 서울의 본회 및 각 지방의 지회에 알리는 등 적극적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국내에서 조국광복운동에 전력을 다하던 그는 1923년 불교 유학생으로 중국 북경으로 건너갔으며, 여기서 3ㆍ1독립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결성된 조선의열단에 가담하였다. 1917년부터 극근군왕부에서 이곳에 학교를 설립하였다. 학교의 명칭은 처음에는 ‘민국학원’이었고, 1923년에 ‘민국대학’으로 개명되었다. 이 대학에서 김성숙은 정치과와 경제학 공부를 하는 한편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창일당 활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중국 간행물에 많은 글을 발표하였다. 이때부터 김성숙은 ‘김규광’이란 이름을 사용하였으며, 이후 중국 내에서 활동할 때는 대부분 ‘김규광’이란 이름을 사용하였다.

북경 제2실험소학교로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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