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엔롱 마을 바로 밖에 자리한 캇힝와이 성곽마을에는 맨 처음 이곳에 성벽을 쌓았던 종족의 후손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 당시 그들은 경쟁 부족과 강도, 해적은 물론 한때 이 지역에 출몰하던 호랑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성벽을 쌓았다.
약 500년전 명나라(1368~1644) 때, 이곳은 파란 벽돌 성곽으로 이뤄진 직사각형 형태의 마을이었다. 이곳에 가장 먼저 정착한 부족은 당씨족으로, 당시 신계 지역을 점령했던 5대 씨족 중 하나였다.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하카족은 지금도 검은 천으로 둘러싼 전통적인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생활한다. 따라서 이 마을을 돌아보면 초기 정착자들의 과거 생활상을 엿볼 수가 있다. 일부 오래된 가옥들은 보다 현대적인 거주지로 변형됐지만, 마을의 감시탑과 해자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
이것도 알아두자!
신계 지역이 영국에 조차된 지 1년 후인 1899년, 캄틴 사람들은 새로운 식민 권력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몇 차례 소규모 충돌이 발생한 후, 지역민들은 캇힝와이 성곽마을의 철문 뒤로 피신했다. 이에 영국군은 마을을 침략해서 철문을 부수고, 그 문을 영국에 전리품으로 보냈다. 1924년, 당씨족 일원이 이 문을 되찾기 위해 영국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우호의 표시로 스텁스 총독은 1925년 행사에서 철문을 되돌려주었다. 현재, 마을의 중심 문 주변에는 이 사건에 대한 설명을 담은 평판이 설치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