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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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하감옥(철령하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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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铁岭河监狱
  • Tiělǐnghé jiānyù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헤이룽장 무단장 무단장시 阳明区 铁岭河 护路街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815.3km
임오교변 당시 많은 대종교인들이 투옥되었던 곳

1930년대 이후 ‘만주국’ 지배하의 만주지역에서 대종교의 교세가 약화되지 않자 일제는 이를 경계했다. 밀정을 통해 감시하다가 노골적으로 대종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1942년 11월 19일 일제는 대종교 총본사를 습격하고 제3세 교주 윤세복尹世復과 안희제安熙濟·이용태李容兌를 비롯한 24명의 대종교 간부들을 피체했다. 대종교 간부들은 국내를 포함하여 북만지역의 신안진新安鎭·하얼빈哈爾濱·무링穆陵·닝안寧安·둔화敦化·미산密山, 동만東滿과 남만南滿지역의 옌지延吉·판스磐石·창춘長春·융지永吉 등 넓은 지역에서 동시에 피체됐다. 이듬해 4월에는 총본사찬리總本司贊理 이현익李玄翼도 붙잡혔다. 또한 대종교 총본사에 소장된 신간서적 2천여 권, 구존 서적 3천여 권, 각종 도서 및 교단 서류 6백여 종을 압수당했다. 이러한 일제의 탄압사건을 임오교변壬午敎變이라 부른다.
윤세복·안희제 등의 25명은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됐는데, 이 중에 성하식成夏植·김진호金鎭浩·안용수安龍洙·이종주李鍾柱 등 4명은 무혐의로 즉시 석방됐다. 나머지 21명의 지도자들은 닝안현 경무과에 특별취조본부를 설치한 일제에 고문과 악형을 4개월 동안 받았다.
1944년 4월 27일 무단강고등법원 제1호실에는 윤세복·김영숙金永肅·윤정현尹珽鉉·이재유李在囿·이용태·이현익李顯翼·최관崔冠 등 7명에 대한 공판이 진행됐다. 재판의 결과로 7명은 무기형 등의 실형을 선고받고 액하감옥(일명 티에링허鐵嶺河 감옥)에 수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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