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남쪽의 언덕에 있으며, 성 안의 땅은 고르지 않지만 북쪽으로 강줄기가 나고 동쪽으로도 강의 지류가 흐르고 있어 천연적인 참호 구실을 하게 되어 있다. 또, 주위에는 넓은 평야가 있어 평지에 성을 쌓는 중국식 터잡음 방식을 엿볼 수 있다. 현재 성벽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성 안에서는 집터·관청·도로·하수도 등의 자취가 발굴되었다. 유물로는 막새기와·벽돌·거울·화폐와 화폐를 주조하였던 틀, 구리화살촉·장신구 등이 발굴되었는데, 특히 글자가 새겨진 기와·벽돌·거울·도장 등이 많이 나왔다. 이로 미루어보아 이 성은 낙랑의 중심지이자 조선현 지역의 땅으로서 낙랑군청과 조선현청이 모두 이 성 안에 있었고, 후기낙랑시대에는 동부도위와 남부도위의 모든 현까지도 관할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토성을 중심으로 동서 20리, 남북 10리 주변에는 약 1,300기의 크고 작은 고분들이 흩어져 있는데, 중국 한대의 묘제를 따른 목곽·토곽묘들이 대부분이며, 화려한 장신구들을 포함한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의 문화 수준을 잘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