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정책 토론회 '중국어 표기 문제' 다뤄
우리 한자음 따를건가, 현지 발음 따를건가

2008년 5월 중국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쓰촨(四川) 대지진'이다. 하지만 같은 지방에서 유래한 요리는 '사천(四川) 요리'다. 한국 주재 중국 대사관 홈페이지 한글판 동정란에는 중국 국가주석 이름이 '호금도(胡錦濤)'와 '후진타오'로 섞여 등장한다. 어느 것이 옳은가?

23일 열리는 토론회 첫 회의 주제는 외래어 표기 문제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 인명(人名)·지명(地名)을 어떻게 적을 것이냐의 쟁점을 다룬다. 우리 한자음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중국 현지 발음에 따라야 하나?

1986년 고시된 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외래어는 현지 발음을 최대한 존중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일본 인명·지명은 일본어 발음에 따라 적도록 했다.

문제는 중국의 경우다. 신해혁명(1911년)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대를 구분해 과거의 경우는 고전을 통해 생활 속에 정착된 대로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도록 하고, 현대의 경우는 중국어 발음에 따라 적게 했다
 
반면 중국 인명·지명은 한자로 표기가 된다는 특성에서 우리 한자음에 따라 적으면 된다는 견해가 있다. 이는 한글 표기로 과연 진정한 원음주의가 가능한가, 한자를 쓸 것인가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어 열띤 공방이 예상된다.

[우리 한자음 따르자] 孔子는 공자, 毛澤東은 마오쩌둥… 불합리하고 헷갈려

가수 '비'는 미국에 가면 '레인'으로 이름을 바꾼다. 그래야 미국인들이 자기 이름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비'라 하면 'B'를 떠올리지 'rain'을 떠올리지 않는다. 중국인 배우 '成龍'은 중국어권에서는 자신을 '청룽'이라고 발음하지만, 영어권에 가면 '재키 찬', 한국에 오면 '성룡'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래야 그 나라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잘 되기 때문이다.

언어가 달라지면 이름의 발음이 달라지는 건 세계 보편적인 현상이다. 서양 로마자문화권의 예를 들면, 스위스의 '제네바'는 영어식 발음이고, 프랑스어로는 '주네브', 독일어로는 '겐프', 이탈리아어로는 '지네브라', 로만슈어로는 '제네브라'다. 뿌리는 모두 같은 라틴어인데 각 민족의 언어에 따라 발음이 조금씩 달라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사는 한자문화권도 마찬가지다. 한자문화권의 뿌리는 같은 한자인데 오랜 기간에 걸쳐 민족에 따라 발음이 조금씩 달라졌다. 중국과 일본은 남의 고유명사도 그냥 자기 발음으로 편하게 읽고 산다. 그런데도 지구상에서 오로지 우리 한국만 근래 들어, 이미 2000년간이나 써오던 우리말 발음을 일부러 버리고 남의 나라말 발음을 가져와 바꿔 부르고 있다. 이는 세계 언어의 보편적 흐름을 거꾸로 거슬러 가는 일이다.







▲ 김창진 초당대 교양학부 교수
▲ 김창진 초당대 교양학부 교수
한국어 표준 발음의 원칙은 '전통성'과 '합리성'이다. '胡錦濤'를 한국어 '호금도'라 읽지 않고 중국어 '후진타오'라고 읽으면 2000년간 내려온 한국어 발음 '전통'이 파괴된다. 그래서 혼란이 온다. 다음으로 '합리성'은 있는지 보기를 들어 살펴보자. 현행법은 '北靑, 北戴河, 北澤俊美, 北海道, 東北'을 각각 '북청, 베이다이허, 기타자와 도시미, 홋카이도, 동북 / 도호쿠 / 둥베이'로 읽으라 한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모두 통달하고 '北'이라는 한자 하나를 '북, 베이, 기타, 홋, 호쿠'의 무려 다섯 가지 발음으로 구별해 읽어야만 한국인 자격이 있는가? '李登浩, 王貞仁, 周玄來, 石田東, 陳丙永, 邊信文'이라는 이름은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이 모두 쓸 수 있다. 그러면 지금 저 이름을 어느 나라 말로 읽어야 하나? 게다가 중국인은 신해혁명(辛亥革命) 이전에는 한국어 발음, 그 이후에는 중국어 발음으로 읽어야 한다니 저 사람들의 국적과 생존연대까지 먼저 알아내야만 이름을 읽을 수 있다. 도대체 세계 어느 나라가 이런 코미디를 하나?

한마디로 현행 외래어표기법은 '불합리'의 극치다.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이 중심이다. '胡錦濤'를 한국인은 한국어로, 중국인은 중국어로, 일본인은 일본어로 2000년간 아무 불편 없이 읽고 말해 왔다. 왜 한국인끼리 한국 땅 안에서 의사소통하면서 편리한 한국어를 버리고 서로 알지도 못하는 외국어로 '사서 고생'해야 하는가? /김창진 초당대 교양학부 교수

[현지 발음 따르자] 장쯔이로 표준 세우니 장자이로 안불러… 일관성의 문제







▲ 고석주 연세대 국어국문학 교수

▲ 고석주 연세대 국어국문학 교수

중국어를 현지음으로 적어야 할 근본적인 이유는 일관성 확보를 위해서다. 우리는 중국어권을 포함해 세상 모든 언어권의 인명·지명을 현지음 또는 그와 유사한 영어권 음에 따라 한글로 적고 있다. 중국어권만 한자음으로 적는 것은 일관성에 반한다.

한국식 한자음으로 적은 '호금도(胡錦濤)'는 중국어에도 한국어에도 없는 말이다. 중국어에서 가져온 외래어가 아니라, 중국어 글자의 한국식 발음에 따라 없는 말을 새로 만든 셈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한글로 현지음을 적는다고 해도 실제 현지 발음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중국의 사성(四聲)을 구분하지 않는 한 어차피 현지에서 못 알아듣는다고 한다. 하지만 한글 표기는 중국인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한국어권 내부의 문제이다. 중국인이 못 알아들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또 한자음으로 적으면 중국어를 몰라도 '호금도'는 쉽게 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중국 인명·지명을 한자로 쓰고 음을 읽으려면 수많은 한자의 음과 뜻을 외워야 한다. 중국어를 배워서 중국어에 가까운 '후진타오'라고 쓰는 것보다 나을 게 없다.

외래어표기법은 한국인이 외국어에서 온 말을 한국어로 말하고 적기 위한 것이지, 외국어에 대응하는 새 한국어를 만드는 법을 규정한 게 아니다. 일반인은 전문가들이 정한 외래어표기법에 따른 글자로 적고 읽으면 된다.

그러면 '공자'는 현대 중국어에서 '쿵쯔'라고 한다는데 어떻게 할까? 현행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공자'라고 쓰면 된다. 과거부터 써오던 한자어는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굳은 말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대의 구분은 그 말이 외래어로서 이미 한국어가 되었느냐의 여부에 따른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한국인 이름을 자국어 방식으로 읽는데, 왜 우리는 원음대로 쓰느냐는 항변도 있다. 그것은 각국 언어의 표기 체계가 가지는 한계 때문에 생겨난 해당 언어의 문제이다. 말을 글자로 적는 데는 어느 문자나 한계가 있다. 오히려 지구상의 어떤 문자보다도 우수한 한글 때문에 우리는 외래어를 원음에 가깝게 표기할 수 있다. 가령 중국 영화배우 '장쯔이(章子怡)'는 오늘날 국내에서 한자음대로 '장자이'라고 하면 잘 못 알아듣는다. 장쯔이라고 일관되게 써왔기 때문이다. 현지음 원칙이라는 새 표준에 일반 대중은 점점 적응해 가고 있다. 결국 표준을 세운 후에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된다.

중국과 교류가 날로 늘고 있는 지금 중국 인명·지명을 현지음으로 적는 것이 시대 흐름에 부합한다.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가져온 말이지, 외국어를 우리 식으로 읽은 것이 아니다. 가능한 한 원음에 가깝게 적는 것이 옳다. 외래어표기법이 원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면 그 말맛이 살아나도록 수정하면 된다. 현행 외래어표기법은 그대로 지켜져야 한다. /고석주 연세대 국어국문학 교수 [기사제공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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