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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조선족으로서 한국 사람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박수학
[온바오닷컴 | 편집부] 중국어 강사 박수학 씨가 중국 현지 삼성전자에서, 한국에서 중국어 강사로 일하면서 느낀 생각을 차분하게 말하고 있다.

1945년 조선은 일제로부터 해방었지만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됐다. 일제의 패전으로 중국 역시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으며 현재의 중국이 건국되었다.

이념과 체제의 대결과 분리에 따라 중국 동북3성 지역인 옛 만주지역에 거주하던 조선인은 중국 공민이 되었으며 같은 사회주의 나라였던 북한으로부터 한국어 관련 서적을 공급받아서 교육을 받았다.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 우대 정책에 입각해서 조선족의 말과 글 사용을 인정했으며 조선족 학교를 세워서 조선어 교육을 가능하도록 지원했다. 소수민족 말살정책으로 고려인의 공동체와 문화를 파괴했던 구 소련과는 상반되는 정책이었다.

중국 조선족 커뮤니티의 유지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새로운 시대적 변화를 맞았다. 중국 현지에 진출하는 한국기업에 채용되고 일부는 한국에 일자리를 찾아왔다.

중국어와 한국어, 일본어 등 3개 언어가 가능한 조선족 동포는 한중 양국의 경제 협력과 교류에 있어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한편 중국 조선족 동포는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을 등에 업고 소득이 급속도로 늘어났으며 중국 다른 민족에 비해서 평균 소득의 성장이 가장 빨랐다.

중국 개혁개방 후, 중국어 뿐 아니라 한국어, 일본어 등 3개 언어를 익힌 조선족 동포들은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를 무대로 경제활동을 펼치며 소득을 올렸다.

물론 반세기가 넘는 단절의 시간 동안, 서로 다른 사회적 환경과 조건에서 살았기 때문에, 수교 이후 조선족 동포와 한국 국민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시절도 있었다.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하지만 말 속에 담은 내용은 달랐다.

한중 수교 25여년이 지나고 한국에 생활하는 60만명에 달한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 인구보다 더 많아졌다. 조선족 동포의 수도는 이미 연길에서 서울 대림동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년지식인 박수학 강사의 이야기는 한국인으로 하여금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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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학의 개인 정보 대공개 (조선족? 한국국적?)
청주시에서 거주하고 있는 원어민 중국어 강사 박수학입니다. 수준 높은 중국어 교육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연락해 주세요. E-mail:psxtruth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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