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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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다도해(多岛海) 김승수 사장
근년 들어서 현지 한인사회에서는 여기 저기서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중국 사업과 생활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기업이 철수하면서 한국 교민들도 귀국을 하고 중국 동포들은 한국으로 진출하면서 중국 현지 한인사회는 급속도로 축소됐다. 중국의 대표적 코리아타운인 베이징 왕징에서조차 한국 교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변함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인들이 있다. 온바오닷컴은 중국 사업과 생활, 20년 이상 된 한국인을 만나서 한국인의 지난 중국 진출 역사를 회고하고 현지 한인사회 발전의 새 전기를 마련하려고 한다. [온바오닷컴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작성됐습니다.
1992년 한중 수교 후, 1995년부터 한국인의 중국 진출이 본격화됐다. 중국 수도 베이징에 한국 기업의 대표사무소가 만들어지면서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95년 4월 10일 중국 최초의 한식 활어회 전문점인 백마강이 개업했다. 현재 베이징 다도해 김승수 사장이 당시 백마강의 주방장이었다.

전남 강진이 고향인 김승수 사장은 1995년 중국 베이징에 진출한 후, 23년 동안 베이징에서 활어회 전문의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베이징에서 중국동포를 만나서 가정도 꾸리고 지난 해에는 아들이 대학생이 됐다. 서울 여의도 일식당에서 일하다가 27세에 베이징에 진출한 김사장. 그의 사업장인 다도해에서 만났다.

1995년, 그가 중국에 진출한 시기에 베이징에는 한식 활어회 전문점이 없었다. 몇 안 되었던 일본식당에서도 횟감을 비행기로 공수하던 시절이었다. 현재 다국적 기업이 즐비한 왕징은 허허 벌판이었다. 당시 27세의 청년이었던 김승수 사장은 중국 수산물 관련 책을 들고 베이징 현지 시장을 누비면서 재료를 찾았다. 온 시장을 누비고 다니며 귀찮게 물고늘어지는 한국청년을 보고 시장의 상인들은 ‘한국귀신(韩国鬼)’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그는 발로 뛰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도, 흔한 정보도 일일이 찾아내야 했다.

그가 베이징에 진출할 당시, 한국인의 의식 속에 중국은 수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먼 나라였다. 27세의 나이에 미지의 ‘중공’ 나라로 진출한 동기가 무엇일까?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병으로 입원한 어머니 치료비 마련을 위해서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20년 넘도록 어머니의 입원 치료비를 보내고 있다. 어머니는 여전히 병원 신세이지만 그의 변함 없는 효심 덕에 살아서 베이징에 있는 아들과 통화를 할 정도이다.

그는 중국 사업과 생활의 생존 근거로 성실성을 꼽았다. 베이징을 비롯해서 중국 주요 도시에는 유명 한식당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을 문을 닫았다. 성공한 한국인들도 많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20년 넘게 업종 변경 없이 외길 인생을 걸어온 김승수 사장 같은 한국인은 대단히 드물다. 2005년 다도해를 개업한 이후, 가족 대사를 제외하고는 출근하지 않은 날이 없다. 그의 성실성의 뿌리는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다. 매달 치료비를 보내야 했기 때문에 한 눈을 팔 겨를이 없었다.

20년 넘게 주방에서 현지 중국인과 함께 한 그는 중국사업의 핵심으로 인간관계를 꼽았다. 사업의 뒤를 봐 줄 수 있는 배경으로서의 인간관계가 아니다. 함께 일하는 현지인과의 관계를 말한다.

중국 현지에서는 한국 주방장 뿐 아니라 많은 기술자, 전문가들이 진출했었다. 나이, 지위, 실력의 권위가 존중되는 한국과는 달리 평등의식이 강한 중국에서 한국식 소통 및 관계는 종종 충돌이 발생했고 원활한 업무와 생활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백마강 주방장 시절에 그의 밑에서 그릇을 닦았던 중국인 톈빈은 아직도 명절이면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묻는다. 중국 남방에서 비빔밥 체인점으로 성공한 그는 “19세의 어린 나이에 그를 만났는데, 다른 주방장과는 달랐다. 산더미처럼 그릇이 쌓이면 같이 설겆이를 하면서 도와줄 정도로 인간적인 분이었다”라고 말한다. 김 사장은 문화의 차이, 오랜 세월의 무게도 이겨낼 수 있는 인정과 겸손으로 현지인과 인간관계를 만들어왔다.

김 사장의 중국생활 동반자는 아내였다. 20년째 어머니의 치료비를 보내고 있지만 불평 한 마디 없는 그의 아내가 한 없이 고맙다고 한다. 중국동포인 아내는 그의 중국 사업과 생활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다도해의 회맛은 김승수 사장의 중국 사업과 생활만큼이나 담백하고 정직하다. 김승수 사장은 중국 한식 활어회의 역사이다. 귀국했던 외교관, 주재원들이 승진을 하고 돌아와서 다시 찾는 이유도 오랜 세월에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는 요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현란할 정도로 화려하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깊은 맛도 떨어진다. 왕징에서만도 적지 않은 한인업소들로 즐비했지만 이제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다도해 김승수 사장의 중국 사업과 생활은 오랜 세월을 이겨내는 근원적 힘은 효심, 성실성, 즉 인간의 기본 도리임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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