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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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한국인(상)회 신주열 회장
근년 들어서 현지 한인사회에서는 여기 저기서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중국 사업과 생활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기업이 철수하면서 한국 교민들도 귀국을 하고 중국 동포들은 한국으로 진출하면서 중국 현지 한인사회는 급속도로 축소됐다. 중국의 대표적 코리아타운인 베이징 왕징에서조차 한국 교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변함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인들이 있다. 온바오닷컴은 중국 사업과 생활, 20년 이상 된 한국인을 만나서 한국인의 지난 중국 진출 역사를 회고하고 현지 한인사회 발전의 새 전기를 마련하려고 한다. [온바오닷컴 편집자 주]
중국 조선족 동포의 수도,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한국인회 신주열(46세)회장은 중국 동북3성 한국인회 회장 중 가장 젊다. 젊은 회장답게 회장 취임 후, 왕성한 활동을 벌이며 연변 한인사회에 활기를 불어넣어왔다.

신주열 회장은 지난 2000년 중국 연변에 진출해서 '해피나라' 외식사업으로 성공했다. 정착 초기에 연변 '동포처녀'와 사랑에 빠져 백년가약을 맺고 가정을 이룬 연변의 '연변사위'이기도 하다.

연변은 현재 1만3천명의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국적을 취득한 13만 5천여명의 중국동포들까지 합치면 약 15만명 한국인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에게는 각별한 정과 의미가 있는 연변의 한국사위, 신주열 회장을 만나보았다.
중국 진출 동기는?
중국은 2000년에 들어오게 되었다. 중국은 인구가 많고 큰 나라여서 먼저 자리를 잡고 중국 문화를 이해하고 있으면 기회가 있으리라는 막연함 바램을 가지고 오게 되었다.

또한 우리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기에 언젠가는 통일돼야 하고 통일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통일 시대를 먼저 준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우리 세대는 자전거를 타고 평양을 지나 중국을 거쳐 유럽까지 횡단하는 '대륙의 꿈'을 꾸었다. 그래서 중국에 오게 됐다.
중국 사업 어떻게 성공했나?
제가 정착하던 초기에 연길은 청소년를 비롯한 젊은 세대가 외식할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창업을 고민하고 조사를 해보니 젊은 세대, 특히 여성이 좋아할 음식사업을 하면 전망이 밝겠다고 생각해서 피자, 돈까스, 스파게티 같은 퓨전양분식집을 오픈하게 되었다.

술냄새, 담배냄새가 없는 깨끗한 환경에서 한국의 맛있는 음식을 드실 수 있는 '해피나라' 음식점을 하게 되면서 외식사업을 펼치게 되었다.

'해피나라'라는 브랜드는 말 그대로 음식으로 행복한 세상을 바라는 마음에서 작명하게 되었다. 우리 음식을 드시고 행복한 미소를 머금는 손님을 생각하면서 지은 이름이다.

현재 해피나라는 프랜차이즈 기업으로서 '해피나라'라는 브랜드 외에 '프로방스', '하회마을감자탕', '카페더설렘' 등 종합외식기업으로 발돋음 하고 있다.
제2의 고향, 연변과의 각별한 인연은?
연변은 사랑이다. 연변에서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를 만났다. 아내가 연변사람이어서, 연변 동포들은 저를 '연변사위'로 부르며 고향사람으로 인정해 주신다. 연변에서 두 아들을 낳아 연변에서 키우고 있으니 여기야 말로 제가 사는 진짜 고향과 다를 바 없다.
한인회 회장을 맡은 이유는?
봉사할 기회가 있다면 제가 받은 분에 넘치는 사랑을 이곳 연변을 위해 다시 돌려드리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10년후에나 생각을 했었다.

많은 분들의 요청이 있었다. 점점 위축되고 힘을 잃어 가면서 소통하지 못한다면 그 사회에서 우리들의 미래인 우리 다음 세대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는데... 그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할 이 사회가 화합하고 교류하는 바른 한인회의 기틀을 다지고 싶었다.

교민사회의 위상이 추락한 상황에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분열되고 있는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부름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조금만 잘못하면 욕만 듣는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열심히 교민여러분의 말씀을 듣고 진심을 가지고 실천하면 교민 위상이 높아지고 연변동포사회와 어울려서 희망이 있는 외국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연변 한인회를 통해서 이루고 싶으신 일은?
한인회는 정말 다양한요구를 실현해야 하는 비영리 봉사단체이다. 우리 교민 모두를 위한 봉사를 하면서 회비를 내는 회원이 주축이 되어 외국에서 교민공동체가 되어 운영되는 조직이다.

▲서로 조금의 차이를 뛰어넘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한인회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되어 신뢰가 가는 한인회 ▲서로 교류하면서 훈훈함이 느껴지는 외국생활이 되도록 힘쓰는 한인회 ▲조선족 동포사회와 연변 한족사회까지 함께 어울리면서 경제, 문화, 사회적으로 교류하면 함께 행복지는 한인회 ▲피부에 와닿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한인회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행사위주의 한인회가 되지 않고 내실을 기해서 교민 한분 한분이 내 조직이라고 느껴지도록 늘 가까이에서 호흡하는 한인회가 되도록 신경썼다.
연변 동포사회와 한국교민사회의 화합을 위하여
저는 늘 동포사회 깊숙히 함께 어울려 왔다. 과기대AMP과정 5기를 다녔고 옥타의 임원으로 활동했으며 조선족음식협회의 활동도 함께 했다. 조글로 CEO클럽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를 활용하여 서로 우의를 다지는 간담회 등 교류사업을 펼치고 있다.

물론 운동 경기를 통한 교류도 진행한다. 한인컵 한중교류 축구대회, 한인회장배 골프대회, 또는 한인 대표선수를 선발하여 현지 동포대회에 출전시켰다.

연변자치주의 8개 사회단체와 수시로 왕래하여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쌀화환 문화를 선도한다던지 모아산 휴지줍기 운동을 전개하여 연변사회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단체로서 자세를 지녀 존경 받는 한국단체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연변 자랑 좀 해달라
연변자치주는 중국에서 특별하고 아름다운 도시이다. 고속기차를 타고 둔화에 들어서면 우리말로 안내 방송을 한다. 가슴이 울컥해진다. 이국땅에서 익숙한 우리말로 안내하는 연변조선족의 고향, 연변은 그러한 곳이다.

또한 장백산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기운이 살아있는 연변자치주이다. 장백산을 발원지로 하여 흐르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중국이 접경을 이루는 곳. 그래서 남과 북, 조선족이 공존하는 지역 연변자치주.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항일독립운동의 중심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연변자치주에서 정착하고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자긍심과 연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더불어 도와가며 사는 오늘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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