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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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A
- ~1.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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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중구 남대문로3가
- 한국 최초의 중앙발권은행인 구(舊) 한국은행은 1909년 11월에 설립되었으며, 1911년 일본이 '조선은행법'을 제정·공포함에 따라 같은 해 8월 조선은행으로 개칭되어 8·15광복 때까지 존속하였다. 그후에도 기본적인 성격이나 체제에 별다른 변화 없이 중앙은행으로서의 기능을 계속 수행하였으나 강력한 권한과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는 중앙은행의 설립이 요청됨에 따라 1950년 6월 새로이 한국은행을 설립하였다.
화폐발행과 통화신용정책의 수립 및 집행, 금융시스템의 안정, 은행의 은행, 정부의 은행, 지급결제제도의 운영·관리, 외화자산의 보유·운용, 은행 경영분석 및 검사, 경제조사 및 통계작성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주요 업무는 일반업무와 발권업무, 국고업무, 외국환업무로 나뉜다. 이 중 일반업무로는 일반금융기관에 대한 예금 및 대출 업무와 공개시장 조작, 통화안정계정의 운용이 있고, 발권업무로는 한국 유일의 법화 발행기관으로서 은행권과 주화 발행 업무가 있다. 국고업무는 국고금의 수급 및 대정부 신용에 대한 업무이며, 외국환업무는 외국환 관리와 금융거래 업무를 말한다.
기구는 한국은행의 정책결정기구로서 통화신용정책 및 한국은행의 운영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한국은행을 대표하고 그 업무를 통할하며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겸임하는 총재와 그를 보좌하는 부총재(1명), 한국은행의 업무를 상시 감사하는 감사(1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재를 포함한 금융통화위원회 위원과 감사는 모두 대통령이 임명한다.
하부조직으로는 2009년 7월 현재 본부에 12국 2실 1원 1센터, 지방의 광역시·도에 16개 지역본부, 미국·일본·영국·독일·중국에 5개 국외사무소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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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본점
E
- ~8.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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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중구 회현동1가
- 우리금융지주의 자회사로, 예금, 외환, 신용카드를 주요 업무로 하는 시중은행.
우리은행의 전신은 1899년 1월 세워진 대한천일은행이다. 대한천일은행은 고종황제의 지원 아래 1899년 5월 인천에 첫 지점을 개설했다. 1911년 조선상업은행, 1950년 한국상업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56년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1966년 11월 국내 은행 최초로 일본 도쿄에 지점을 개설했다. 1981년 6월 국내 최초의 민영 은행이 되었다.
1997년 IMF 관리체제 아래 금융권의 구조조정이 대두되자, 1998년 12월 한일은행과 합병했다. 같은 해 10월 정부가 자본금 3조 2642억 원을 출자해 12만 명이 참여한 공모행사를 통해 한빛은행이 탄생했다.
2001년 12월 평화은행을 흡수 합병했다. 평화비자카드는 우리카드로 바뀌었고 평화은행은 우리은행으로 흡수 합병되었다. 2001년 4월 예금보험공사가 설립한 우리금융지주에 편입되어 자회사가 되었다. 2002년 5월 지주회사와 동일한 현재의 이름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2003년 우리종합금융, 2004년 우리신용카드를 합병했다.
2002년 12월 베트남 호치민에 사무소를 개설한 데 이어 2003년 6월 러시아 모스크바, 2003년 7월 중국 베이징에 지점을 개설했다. 2006년 1월 남북출입국사무소 청사에 환전소를 개점했다. 2007년 11월 중국 현지법인인 중국우리은행유한공사를 설립했다.
2001년 8월 국내금융기관 최초로 인터넷뱅킹 보안인증을 획득했으며, 같은 해 11월 인터넷뱅킹 가입고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2008년 11월 영국 <더 뱅크>지 선정, 2년 연속 한국 최우수은행에 선정되었고, 2009년 12월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선정 제17회 고객만족경영대상을 4년 연속 수상했다. 2010년 7월 국내 금융기관 최초로 매킨토시와 리눅스에서 인터넷뱅킹이 가능한 ‘우리오픈뱅킹’ 서비스를 실시했다.
2010년 9월 현재 우리금융지주가 10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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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환은행
- ~1.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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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중구 을지로2가
- 외국환거래와 무역금융의 원활을 기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내은행. 1967년 한국외환은행법에 의거하여 특수은행으로 설립하였으나, 1989년 한국외환은행법이 폐지되면서 일반은행으로 전환하였다.
1967년 1월 30일 한국외환은행법에 근거하여 외국환거래와 무역금융의 원활을 기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72년 국내 최초로 온라인 보통예금을 취급하기 시작하였고, 1978년에는 국내 최초로 신용카드 업무를 취급하기 시작하였으며, 1985년 3월부터 신탁 업무를 취급하였다. 1989년 한국외환은행법이 폐지됨에 따라 특수은행에서 일반은행으로 전환하였고, 1994년 4월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였다. 1997년 국내 최초로 북한에 금호출장소를 개점하였고, 1999년 한외종합금융(주)을 합병하였다. 2001년 3월 국내 최대의 외국환전문 웹사이트를 개설하였으며, 2001년 7월에 이어 2002년 4월 미국의 국제금융전문 월간지인 글로벌 파이낸스지로부터 한국의 최우수 수출입은행으로 선정되었다. 2003년 10월 미국계 헤지펀드 론스타에 인수되었고, 2004년 2월 외환신용카드(주)를 흡수합병하였다. 2007년 서비스 품질 혁신 산업자원부장관상을 수상하였고, 2010년 10월 이동점포(KEB Smart Wing)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주요 사업은 예금 업무, 신탁상품 업무, 대출 업무, 투자상품 판매대행, 프라이빗 뱅킹(PB), 환전 등 외환 업무, 신용장 개설 등 수출입 업무, 신용카드 업무, 파생상품 업무, 투자금융 업무, 방카슈랑스 업무, 기업어음의 할인과 중개 등 종합금융 업무 등이다. 계열사로는 외환캐피탈(주), 외환선물(주), 외환펀드서비스(주) 등 국내 자회사와 외환뉴욕파이낸셜, 외환로스앤젤레스파이낸셜, 미주외환송금서비스, 캐나다한국외환은행, 환은호주금융회사, 인도네시아한국외환은행, 독일외환은행, 브라질한국외환은행, 외환은행(중국)유한공사, 환은아세아재무유한공사 등의 해외 현지법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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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손해보험(주)
- ~0.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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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한국
- 롯데손해보험은 2008년 62년 전통의 손해보험 전문기업 대한화재해상보험을 롯데가
인수하면서 새롭게 출범한 금융전문기업입니다.
롯데손해보험은 장기보험, 연금보험, 자동차보험, 화재보험, 해상보험 등 손해보험 전반에
걸쳐 고객의 니즈에 맞춘 다양한 상품 개발에 앞장서고 있으며 설계사와 대리점 조직을
통한 전통적 판매 채널은 물론 전화와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전문 채널, 은행을 통한
방카슈랑스 채널, TV를 통한 홈쇼핑 채널 등 고객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접점을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아울러 고객 만족 콜센터를 통한 ‘24시간 바로 처리 서비스’와 보상요원을 통한 ‘해피카
서비스’, ‘전문 모니터링 서비스’, ‘현장 출동 서비스’ 등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다양하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롯데그룹이 보유한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등 국내 최고의 유통 서비스망을 적극 활용, 고객이 편리하게 접할 수 있는 보험 서비스 개발에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롯데손해보험은 고객 한분 한분의 금융자산에 대한 최적의 컨설팅으로 고객의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다하며 고객의 밝은 미래와 함께하는기업, 고객을 섬기는 기업으로 발전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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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증권거래소
B
- ~5.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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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 한국거래소는 유가증권시장, 코스닥, 파생상품시장 등 국내 증권 관련 거래를 총괄하는 거래소이다. 증권사 등 금융기관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세운 민간기업이나 거래소의 특성상 정부의 통제를 어느 정도 받는 공적 기관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증권거래소의 모태는 일제 강점기 때 인천에서 열렸던 미두시장이었다. 이 시장에서는 땅문서 등 고전적 의미의 증권이 거래됐다. 1930년 일제가 총독부령으로 서울에 정식 증권거래소를 세웠다. 당시 국내 증권거래 시장은 일본 회사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해방 직후 증권거래소는 폐쇄됐고 증권회사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 국채와 땅문서,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귀속재산 증서 등 당시 주로 거래되던 증권의 원활한 매매가 이뤄지지 않자 정부가 정식으로 증권거래소 설립을 추진했다. 1953년 대한증권업협회가 출범했고 1956년 금융회사와 증권회사가 공동으로 출자해 대한증권거래소가 세워졌다. 대한증권이 국내 1호로 증권업 허가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서울, 신우, 한흥, 신영, 한양, 부국, 신흥증권 등이 증권 매매를 시작했다. 1963년 증권거래법이 개정되면서 대한증권거래소는 정부 출자기관으로 바뀌었다. 이름도 한국증권거래소로 변경됐다. 1987년 증권거래법이 다시 바뀌면서 민간 출자기관으로 환원됐다.
1996년 증권업협회가 주도해 코스닥시장이 문을 열었다. 당시 코스닥시장은 증권거래소가 운영하던 유가증권시장과는 별개로 운영되는 시장이었다. 또 선물(先物) 거래는 부산에 본부를 둔 한국선물거래소가 주도하고 있었다. 세 시장이 따로 운영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여론에 따라 2004년 한국증권선물거래소법이 새로 만들어졌다. 이 법을 근거로 2005년 세 시장을 아우르는 통합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출범했다. 2009년 지금의 한국거래소로 이름을 바꿨다. 주요 업무는 증권과 장내 파생상품시장을 운영하고 시장 감시 등 각종 제도를 집행하는 일이다. 각 시장을 운영하는 유가증권시장본부, 코스닥시장본부, 파생상품시장본부 등과 시장감시위원회 및 경영지원본부로 조직이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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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레일 거래소
C
- ~6.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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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강남구 신사동
- 코인레일(Coinrail)은 대한민국의 암호화폐 거래소이다.
비트코인, 비트코인 캐시, 이더리움, 이더리움 클래식, 리플, 퀀텀, 라이트코인, 스톰, 트론, 덴트, 메디 등을 거래할 수 있다.
깔끔한 UI와 프로차트, 다양한 알트코인 상장이 코인레일의 특징이다.
2017년 9월 오픈하였으며, 2017년 12월에는 일주일 거래액이 1,300억을 돌파하였다.
국내 최초로 단독 BTC 마켓을 운영중에 있으며, 다양한 알트코인들 역시 단독으로 상장하여 거래량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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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썸 암호화폐 거래소
- ~8.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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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강남구 역삼동
- 대한민국의 암호화폐 거래소이다. 거래액 순위는 Binance 거래소 보다 약간 아래이며 한국 내에선 2위, 전세계 5위다.[3]
2017년 12월 4일 기준 비트코인, Ethereum, Ethereum Classic, 대시, 리플, 모네로, 라이트코인, 비트코인 캐시, Zcash, 퀀텀, 비트코인 골드, EOS를 거래할 수 있다. 초창기에 앞서 운영되어있던 코빗 등에서 거래량을 뺏어와 넘사벽급 거래량을 자랑했었다.
2013년 12월 엑스코인(xcoin)이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비트코인 거래소를 모태로 하고 있다. 이후 2015년 6월 거래소의 이름을 빗썸(Bithumb)으로 변경하여 현재에 이른다.
과거에는 빗썸 카페라는 이름의 비트코인 관련 한국어 커뮤니티를 운영했으나, 몇 차례에 걸친 개편 끝에 커뮤니티의 성격은 거의 사라진 상태. 대신 빗썸에 대한 고객들의 성토의 장으로 변모했다.
언제부터인가 비트코인 거래량을 제외한 나머지 암호화페들의 거래량이 적어졌는데 아마 경쟁사들의 유저 흡수와 대한민국의 암호화폐 거래소 규제로 인한 중국 자본의 유출, 그리고 가끔 불안한 서버 상황 때문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비트코인 거래량은 전세계 9위권으로 뚝 떨어졌다. 유저 유입도 적고, 타 거래소에 비해 편리하지 않은 UI를 가지고 있다. 2013년 디자인 그대로인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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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
- ~1.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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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중구 남대문로2가
- 예금, 대출, 인터넷 뱅킹을 주요 업무로 하는 국내 시중은행. 1963년 2월 서민경제의 발전과 향상을 위해 제정된 국민은행법(법률 1201호)이 공포됨에 따라 국민은행이 세워졌다. 1960년 이전까지 사설 무진회사가 1500여 개 난립하고 파산이 잦아 서민들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서민금융제도를 확립하고 무진회사를 서민금융 전담금융기관으로 개편시키고자 1961년 말 국민은행법을 제정 공포했다. 1980년 9월 국민카드 발급업무를 시작했다. 1984년 10월 국민리스, 1986년 11월 국민기술금융을 설립했다. 1987년 9월 국민신용카드를 설립하고, 1989년 2월 신탁업무 취급을 시작했다. 1991년 10월 룩셈부르크 현지법인, 1992년 11월 도쿄지점, 1994년 3월 싱가포르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1994년 4월 총 수신 20조 원을 넘어섰으며, 1994년 9월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1995년 1월 국민은행법이 폐지됨에 따라 민영화됐다. 1997년 3월 국민선물을 설립했다. 1998년 6월 대동은행의 자산 및 부채를 인수했으며, 같은 해 12월 한국장기신용은행(납입자본금 1조 3815억 원)을 합병했다. 2001년 3월 국내 금융기관 최초로 총 자산 100조 원을 넘어섰다. 2001년 4월 주택은행과 합병했으며, 같은 해 7월 김정태 은행장이 ‘주택 국민 통합은행장’으로 선정되었다. 김 행장은 ‘장사꾼 은행장’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국민은행을 흑자 은행으로 만들었다. 1998년 당시 국민은행은 2900억 원의 적자를 냈으나, 이후 4년간 4500억~1조 3000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2002년 5월 <파이낸셜 타임스>지 선정, 국내 금융권 최초로 세계 500대 기업에 진입했다. 2002년 12월 온라인 연합복권인 로토(Lotto)를 발행했다. 2003년 9월 국민카드를 합병했다. 2005년 4월 국내 최초로 모바일 증권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9년 11월 국내 금융권 최초로 IT서비스 전 부문에 대한 ‘IS/IEC 27001’ 국제 인증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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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A
- ~1.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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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중구 남대문로3가
- 한국 최초의 중앙발권은행인 구(舊) 한국은행은 1909년 11월에 설립되었으며, 1911년 일본이 '조선은행법'을 제정·공포함에 따라 같은 해 8월 조선은행으로 개칭되어 8·15광복 때까지 존속하였다. 그후에도 기본적인 성격이나 체제에 별다른 변화 없이 중앙은행으로서의 기능을 계속 수행하였으나 강력한 권한과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는 중앙은행의 설립이 요청됨에 따라 1950년 6월 새로이 한국은행을 설립하였다.
화폐발행과 통화신용정책의 수립 및 집행, 금융시스템의 안정, 은행의 은행, 정부의 은행, 지급결제제도의 운영·관리, 외화자산의 보유·운용, 은행 경영분석 및 검사, 경제조사 및 통계작성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주요 업무는 일반업무와 발권업무, 국고업무, 외국환업무로 나뉜다. 이 중 일반업무로는 일반금융기관에 대한 예금 및 대출 업무와 공개시장 조작, 통화안정계정의 운용이 있고, 발권업무로는 한국 유일의 법화 발행기관으로서 은행권과 주화 발행 업무가 있다. 국고업무는 국고금의 수급 및 대정부 신용에 대한 업무이며, 외국환업무는 외국환 관리와 금융거래 업무를 말한다.
기구는 한국은행의 정책결정기구로서 통화신용정책 및 한국은행의 운영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한국은행을 대표하고 그 업무를 통할하며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겸임하는 총재와 그를 보좌하는 부총재(1명), 한국은행의 업무를 상시 감사하는 감사(1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재를 포함한 금융통화위원회 위원과 감사는 모두 대통령이 임명한다.
하부조직으로는 2009년 7월 현재 본부에 12국 2실 1원 1센터, 지방의 광역시·도에 16개 지역본부, 미국·일본·영국·독일·중국에 5개 국외사무소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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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레일 거래소
G
- ~6.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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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강남구 신사동
- 코인레일(Coinrail)은 대한민국의 암호화폐 거래소이다.
비트코인, 비트코인 캐시, 이더리움, 이더리움 클래식, 리플, 퀀텀, 라이트코인, 스톰, 트론, 덴트, 메디 등을 거래할 수 있다.
깔끔한 UI와 프로차트, 다양한 알트코인 상장이 코인레일의 특징이다.
2017년 9월 오픈하였으며, 2017년 12월에는 일주일 거래액이 1,300억을 돌파하였다.
국내 최초로 단독 BTC 마켓을 운영중에 있으며, 다양한 알트코인들 역시 단독으로 상장하여 거래량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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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환은행
- ~1.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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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중구 을지로2가
- 외국환거래와 무역금융의 원활을 기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내은행. 1967년 한국외환은행법에 의거하여 특수은행으로 설립하였으나, 1989년 한국외환은행법이 폐지되면서 일반은행으로 전환하였다.
1967년 1월 30일 한국외환은행법에 근거하여 외국환거래와 무역금융의 원활을 기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72년 국내 최초로 온라인 보통예금을 취급하기 시작하였고, 1978년에는 국내 최초로 신용카드 업무를 취급하기 시작하였으며, 1985년 3월부터 신탁 업무를 취급하였다. 1989년 한국외환은행법이 폐지됨에 따라 특수은행에서 일반은행으로 전환하였고, 1994년 4월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였다. 1997년 국내 최초로 북한에 금호출장소를 개점하였고, 1999년 한외종합금융(주)을 합병하였다. 2001년 3월 국내 최대의 외국환전문 웹사이트를 개설하였으며, 2001년 7월에 이어 2002년 4월 미국의 국제금융전문 월간지인 글로벌 파이낸스지로부터 한국의 최우수 수출입은행으로 선정되었다. 2003년 10월 미국계 헤지펀드 론스타에 인수되었고, 2004년 2월 외환신용카드(주)를 흡수합병하였다. 2007년 서비스 품질 혁신 산업자원부장관상을 수상하였고, 2010년 10월 이동점포(KEB Smart Wing)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주요 사업은 예금 업무, 신탁상품 업무, 대출 업무, 투자상품 판매대행, 프라이빗 뱅킹(PB), 환전 등 외환 업무, 신용장 개설 등 수출입 업무, 신용카드 업무, 파생상품 업무, 투자금융 업무, 방카슈랑스 업무, 기업어음의 할인과 중개 등 종합금융 업무 등이다. 계열사로는 외환캐피탈(주), 외환선물(주), 외환펀드서비스(주) 등 국내 자회사와 외환뉴욕파이낸셜, 외환로스앤젤레스파이낸셜, 미주외환송금서비스, 캐나다한국외환은행, 환은호주금융회사, 인도네시아한국외환은행, 독일외환은행, 브라질한국외환은행, 외환은행(중국)유한공사, 환은아세아재무유한공사 등의 해외 현지법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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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썸 암호화폐 거래소
- ~8.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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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강남구 역삼동
- 대한민국의 암호화폐 거래소이다. 거래액 순위는 Binance 거래소 보다 약간 아래이며 한국 내에선 2위, 전세계 5위다.[3]
2017년 12월 4일 기준 비트코인, Ethereum, Ethereum Classic, 대시, 리플, 모네로, 라이트코인, 비트코인 캐시, Zcash, 퀀텀, 비트코인 골드, EOS를 거래할 수 있다. 초창기에 앞서 운영되어있던 코빗 등에서 거래량을 뺏어와 넘사벽급 거래량을 자랑했었다.
2013년 12월 엑스코인(xcoin)이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비트코인 거래소를 모태로 하고 있다. 이후 2015년 6월 거래소의 이름을 빗썸(Bithumb)으로 변경하여 현재에 이른다.
과거에는 빗썸 카페라는 이름의 비트코인 관련 한국어 커뮤니티를 운영했으나, 몇 차례에 걸친 개편 끝에 커뮤니티의 성격은 거의 사라진 상태. 대신 빗썸에 대한 고객들의 성토의 장으로 변모했다.
언제부터인가 비트코인 거래량을 제외한 나머지 암호화페들의 거래량이 적어졌는데 아마 경쟁사들의 유저 흡수와 대한민국의 암호화폐 거래소 규제로 인한 중국 자본의 유출, 그리고 가끔 불안한 서버 상황 때문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비트코인 거래량은 전세계 9위권으로 뚝 떨어졌다. 유저 유입도 적고, 타 거래소에 비해 편리하지 않은 UI를 가지고 있다. 2013년 디자인 그대로인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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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손해보험(주)
- ~0.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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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한국
- 롯데손해보험은 2008년 62년 전통의 손해보험 전문기업 대한화재해상보험을 롯데가
인수하면서 새롭게 출범한 금융전문기업입니다.
롯데손해보험은 장기보험, 연금보험, 자동차보험, 화재보험, 해상보험 등 손해보험 전반에
걸쳐 고객의 니즈에 맞춘 다양한 상품 개발에 앞장서고 있으며 설계사와 대리점 조직을
통한 전통적 판매 채널은 물론 전화와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전문 채널, 은행을 통한
방카슈랑스 채널, TV를 통한 홈쇼핑 채널 등 고객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접점을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아울러 고객 만족 콜센터를 통한 ‘24시간 바로 처리 서비스’와 보상요원을 통한 ‘해피카
서비스’, ‘전문 모니터링 서비스’, ‘현장 출동 서비스’ 등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다양하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롯데그룹이 보유한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등 국내 최고의 유통 서비스망을 적극 활용, 고객이 편리하게 접할 수 있는 보험 서비스 개발에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롯데손해보험은 고객 한분 한분의 금융자산에 대한 최적의 컨설팅으로 고객의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다하며 고객의 밝은 미래와 함께하는기업, 고객을 섬기는 기업으로 발전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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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증권거래소
B
- ~5.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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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 한국거래소는 유가증권시장, 코스닥, 파생상품시장 등 국내 증권 관련 거래를 총괄하는 거래소이다. 증권사 등 금융기관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세운 민간기업이나 거래소의 특성상 정부의 통제를 어느 정도 받는 공적 기관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증권거래소의 모태는 일제 강점기 때 인천에서 열렸던 미두시장이었다. 이 시장에서는 땅문서 등 고전적 의미의 증권이 거래됐다. 1930년 일제가 총독부령으로 서울에 정식 증권거래소를 세웠다. 당시 국내 증권거래 시장은 일본 회사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해방 직후 증권거래소는 폐쇄됐고 증권회사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 국채와 땅문서,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귀속재산 증서 등 당시 주로 거래되던 증권의 원활한 매매가 이뤄지지 않자 정부가 정식으로 증권거래소 설립을 추진했다. 1953년 대한증권업협회가 출범했고 1956년 금융회사와 증권회사가 공동으로 출자해 대한증권거래소가 세워졌다. 대한증권이 국내 1호로 증권업 허가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서울, 신우, 한흥, 신영, 한양, 부국, 신흥증권 등이 증권 매매를 시작했다. 1963년 증권거래법이 개정되면서 대한증권거래소는 정부 출자기관으로 바뀌었다. 이름도 한국증권거래소로 변경됐다. 1987년 증권거래법이 다시 바뀌면서 민간 출자기관으로 환원됐다.
1996년 증권업협회가 주도해 코스닥시장이 문을 열었다. 당시 코스닥시장은 증권거래소가 운영하던 유가증권시장과는 별개로 운영되는 시장이었다. 또 선물(先物) 거래는 부산에 본부를 둔 한국선물거래소가 주도하고 있었다. 세 시장이 따로 운영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여론에 따라 2004년 한국증권선물거래소법이 새로 만들어졌다. 이 법을 근거로 2005년 세 시장을 아우르는 통합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출범했다. 2009년 지금의 한국거래소로 이름을 바꿨다. 주요 업무는 증권과 장내 파생상품시장을 운영하고 시장 감시 등 각종 제도를 집행하는 일이다. 각 시장을 운영하는 유가증권시장본부, 코스닥시장본부, 파생상품시장본부 등과 시장감시위원회 및 경영지원본부로 조직이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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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본점
E
- ~8.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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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중구 회현동1가
- 우리금융지주의 자회사로, 예금, 외환, 신용카드를 주요 업무로 하는 시중은행.
우리은행의 전신은 1899년 1월 세워진 대한천일은행이다. 대한천일은행은 고종황제의 지원 아래 1899년 5월 인천에 첫 지점을 개설했다. 1911년 조선상업은행, 1950년 한국상업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56년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1966년 11월 국내 은행 최초로 일본 도쿄에 지점을 개설했다. 1981년 6월 국내 최초의 민영 은행이 되었다.
1997년 IMF 관리체제 아래 금융권의 구조조정이 대두되자, 1998년 12월 한일은행과 합병했다. 같은 해 10월 정부가 자본금 3조 2642억 원을 출자해 12만 명이 참여한 공모행사를 통해 한빛은행이 탄생했다.
2001년 12월 평화은행을 흡수 합병했다. 평화비자카드는 우리카드로 바뀌었고 평화은행은 우리은행으로 흡수 합병되었다. 2001년 4월 예금보험공사가 설립한 우리금융지주에 편입되어 자회사가 되었다. 2002년 5월 지주회사와 동일한 현재의 이름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2003년 우리종합금융, 2004년 우리신용카드를 합병했다.
2002년 12월 베트남 호치민에 사무소를 개설한 데 이어 2003년 6월 러시아 모스크바, 2003년 7월 중국 베이징에 지점을 개설했다. 2006년 1월 남북출입국사무소 청사에 환전소를 개점했다. 2007년 11월 중국 현지법인인 중국우리은행유한공사를 설립했다.
2001년 8월 국내금융기관 최초로 인터넷뱅킹 보안인증을 획득했으며, 같은 해 11월 인터넷뱅킹 가입고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2008년 11월 영국 <더 뱅크>지 선정, 2년 연속 한국 최우수은행에 선정되었고, 2009년 12월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선정 제17회 고객만족경영대상을 4년 연속 수상했다. 2010년 7월 국내 금융기관 최초로 매킨토시와 리눅스에서 인터넷뱅킹이 가능한 ‘우리오픈뱅킹’ 서비스를 실시했다.
2010년 9월 현재 우리금융지주가 10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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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
- ~1.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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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중구 남대문로2가
- 예금, 대출, 인터넷 뱅킹을 주요 업무로 하는 국내 시중은행. 1963년 2월 서민경제의 발전과 향상을 위해 제정된 국민은행법(법률 1201호)이 공포됨에 따라 국민은행이 세워졌다. 1960년 이전까지 사설 무진회사가 1500여 개 난립하고 파산이 잦아 서민들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서민금융제도를 확립하고 무진회사를 서민금융 전담금융기관으로 개편시키고자 1961년 말 국민은행법을 제정 공포했다. 1980년 9월 국민카드 발급업무를 시작했다. 1984년 10월 국민리스, 1986년 11월 국민기술금융을 설립했다. 1987년 9월 국민신용카드를 설립하고, 1989년 2월 신탁업무 취급을 시작했다. 1991년 10월 룩셈부르크 현지법인, 1992년 11월 도쿄지점, 1994년 3월 싱가포르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1994년 4월 총 수신 20조 원을 넘어섰으며, 1994년 9월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1995년 1월 국민은행법이 폐지됨에 따라 민영화됐다. 1997년 3월 국민선물을 설립했다. 1998년 6월 대동은행의 자산 및 부채를 인수했으며, 같은 해 12월 한국장기신용은행(납입자본금 1조 3815억 원)을 합병했다. 2001년 3월 국내 금융기관 최초로 총 자산 100조 원을 넘어섰다. 2001년 4월 주택은행과 합병했으며, 같은 해 7월 김정태 은행장이 ‘주택 국민 통합은행장’으로 선정되었다. 김 행장은 ‘장사꾼 은행장’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국민은행을 흑자 은행으로 만들었다. 1998년 당시 국민은행은 2900억 원의 적자를 냈으나, 이후 4년간 4500억~1조 3000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2002년 5월 <파이낸셜 타임스>지 선정, 국내 금융권 최초로 세계 500대 기업에 진입했다. 2002년 12월 온라인 연합복권인 로토(Lotto)를 발행했다. 2003년 9월 국민카드를 합병했다. 2005년 4월 국내 최초로 모바일 증권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9년 11월 국내 금융권 최초로 IT서비스 전 부문에 대한 ‘IS/IEC 27001’ 국제 인증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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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A
- ~1.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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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중구 남대문로3가
- 한국 최초의 중앙발권은행인 구(舊) 한국은행은 1909년 11월에 설립되었으며, 1911년 일본이 '조선은행법'을 제정·공포함에 따라 같은 해 8월 조선은행으로 개칭되어 8·15광복 때까지 존속하였다. 그후에도 기본적인 성격이나 체제에 별다른 변화 없이 중앙은행으로서의 기능을 계속 수행하였으나 강력한 권한과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는 중앙은행의 설립이 요청됨에 따라 1950년 6월 새로이 한국은행을 설립하였다.
화폐발행과 통화신용정책의 수립 및 집행, 금융시스템의 안정, 은행의 은행, 정부의 은행, 지급결제제도의 운영·관리, 외화자산의 보유·운용, 은행 경영분석 및 검사, 경제조사 및 통계작성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주요 업무는 일반업무와 발권업무, 국고업무, 외국환업무로 나뉜다. 이 중 일반업무로는 일반금융기관에 대한 예금 및 대출 업무와 공개시장 조작, 통화안정계정의 운용이 있고, 발권업무로는 한국 유일의 법화 발행기관으로서 은행권과 주화 발행 업무가 있다. 국고업무는 국고금의 수급 및 대정부 신용에 대한 업무이며, 외국환업무는 외국환 관리와 금융거래 업무를 말한다.
기구는 한국은행의 정책결정기구로서 통화신용정책 및 한국은행의 운영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한국은행을 대표하고 그 업무를 통할하며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겸임하는 총재와 그를 보좌하는 부총재(1명), 한국은행의 업무를 상시 감사하는 감사(1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재를 포함한 금융통화위원회 위원과 감사는 모두 대통령이 임명한다.
하부조직으로는 2009년 7월 현재 본부에 12국 2실 1원 1센터, 지방의 광역시·도에 16개 지역본부, 미국·일본·영국·독일·중국에 5개 국외사무소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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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본점
C
- ~8.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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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중구 회현동1가
- 우리금융지주의 자회사로, 예금, 외환, 신용카드를 주요 업무로 하는 시중은행.
우리은행의 전신은 1899년 1월 세워진 대한천일은행이다. 대한천일은행은 고종황제의 지원 아래 1899년 5월 인천에 첫 지점을 개설했다. 1911년 조선상업은행, 1950년 한국상업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56년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1966년 11월 국내 은행 최초로 일본 도쿄에 지점을 개설했다. 1981년 6월 국내 최초의 민영 은행이 되었다.
1997년 IMF 관리체제 아래 금융권의 구조조정이 대두되자, 1998년 12월 한일은행과 합병했다. 같은 해 10월 정부가 자본금 3조 2642억 원을 출자해 12만 명이 참여한 공모행사를 통해 한빛은행이 탄생했다.
2001년 12월 평화은행을 흡수 합병했다. 평화비자카드는 우리카드로 바뀌었고 평화은행은 우리은행으로 흡수 합병되었다. 2001년 4월 예금보험공사가 설립한 우리금융지주에 편입되어 자회사가 되었다. 2002년 5월 지주회사와 동일한 현재의 이름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2003년 우리종합금융, 2004년 우리신용카드를 합병했다.
2002년 12월 베트남 호치민에 사무소를 개설한 데 이어 2003년 6월 러시아 모스크바, 2003년 7월 중국 베이징에 지점을 개설했다. 2006년 1월 남북출입국사무소 청사에 환전소를 개점했다. 2007년 11월 중국 현지법인인 중국우리은행유한공사를 설립했다.
2001년 8월 국내금융기관 최초로 인터넷뱅킹 보안인증을 획득했으며, 같은 해 11월 인터넷뱅킹 가입고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2008년 11월 영국 <더 뱅크>지 선정, 2년 연속 한국 최우수은행에 선정되었고, 2009년 12월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선정 제17회 고객만족경영대상을 4년 연속 수상했다. 2010년 7월 국내 금융기관 최초로 매킨토시와 리눅스에서 인터넷뱅킹이 가능한 ‘우리오픈뱅킹’ 서비스를 실시했다.
2010년 9월 현재 우리금융지주가 10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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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레일 거래소
E
- ~6.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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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강남구 신사동
- 코인레일(Coinrail)은 대한민국의 암호화폐 거래소이다.
비트코인, 비트코인 캐시, 이더리움, 이더리움 클래식, 리플, 퀀텀, 라이트코인, 스톰, 트론, 덴트, 메디 등을 거래할 수 있다.
깔끔한 UI와 프로차트, 다양한 알트코인 상장이 코인레일의 특징이다.
2017년 9월 오픈하였으며, 2017년 12월에는 일주일 거래액이 1,300억을 돌파하였다.
국내 최초로 단독 BTC 마켓을 운영중에 있으며, 다양한 알트코인들 역시 단독으로 상장하여 거래량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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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환은행
K
- ~1.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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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중구 을지로2가
- 외국환거래와 무역금융의 원활을 기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내은행. 1967년 한국외환은행법에 의거하여 특수은행으로 설립하였으나, 1989년 한국외환은행법이 폐지되면서 일반은행으로 전환하였다.
1967년 1월 30일 한국외환은행법에 근거하여 외국환거래와 무역금융의 원활을 기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72년 국내 최초로 온라인 보통예금을 취급하기 시작하였고, 1978년에는 국내 최초로 신용카드 업무를 취급하기 시작하였으며, 1985년 3월부터 신탁 업무를 취급하였다. 1989년 한국외환은행법이 폐지됨에 따라 특수은행에서 일반은행으로 전환하였고, 1994년 4월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였다. 1997년 국내 최초로 북한에 금호출장소를 개점하였고, 1999년 한외종합금융(주)을 합병하였다. 2001년 3월 국내 최대의 외국환전문 웹사이트를 개설하였으며, 2001년 7월에 이어 2002년 4월 미국의 국제금융전문 월간지인 글로벌 파이낸스지로부터 한국의 최우수 수출입은행으로 선정되었다. 2003년 10월 미국계 헤지펀드 론스타에 인수되었고, 2004년 2월 외환신용카드(주)를 흡수합병하였다. 2007년 서비스 품질 혁신 산업자원부장관상을 수상하였고, 2010년 10월 이동점포(KEB Smart Wing)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주요 사업은 예금 업무, 신탁상품 업무, 대출 업무, 투자상품 판매대행, 프라이빗 뱅킹(PB), 환전 등 외환 업무, 신용장 개설 등 수출입 업무, 신용카드 업무, 파생상품 업무, 투자금융 업무, 방카슈랑스 업무, 기업어음의 할인과 중개 등 종합금융 업무 등이다. 계열사로는 외환캐피탈(주), 외환선물(주), 외환펀드서비스(주) 등 국내 자회사와 외환뉴욕파이낸셜, 외환로스앤젤레스파이낸셜, 미주외환송금서비스, 캐나다한국외환은행, 환은호주금융회사, 인도네시아한국외환은행, 독일외환은행, 브라질한국외환은행, 외환은행(중국)유한공사, 환은아세아재무유한공사 등의 해외 현지법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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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썸 암호화폐 거래소
- ~8.4km
-
[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강남구 역삼동
- 대한민국의 암호화폐 거래소이다. 거래액 순위는 Binance 거래소 보다 약간 아래이며 한국 내에선 2위, 전세계 5위다.[3]
2017년 12월 4일 기준 비트코인, Ethereum, Ethereum Classic, 대시, 리플, 모네로, 라이트코인, 비트코인 캐시, Zcash, 퀀텀, 비트코인 골드, EOS를 거래할 수 있다. 초창기에 앞서 운영되어있던 코빗 등에서 거래량을 뺏어와 넘사벽급 거래량을 자랑했었다.
2013년 12월 엑스코인(xcoin)이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비트코인 거래소를 모태로 하고 있다. 이후 2015년 6월 거래소의 이름을 빗썸(Bithumb)으로 변경하여 현재에 이른다.
과거에는 빗썸 카페라는 이름의 비트코인 관련 한국어 커뮤니티를 운영했으나, 몇 차례에 걸친 개편 끝에 커뮤니티의 성격은 거의 사라진 상태. 대신 빗썸에 대한 고객들의 성토의 장으로 변모했다.
언제부터인가 비트코인 거래량을 제외한 나머지 암호화페들의 거래량이 적어졌는데 아마 경쟁사들의 유저 흡수와 대한민국의 암호화폐 거래소 규제로 인한 중국 자본의 유출, 그리고 가끔 불안한 서버 상황 때문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비트코인 거래량은 전세계 9위권으로 뚝 떨어졌다. 유저 유입도 적고, 타 거래소에 비해 편리하지 않은 UI를 가지고 있다. 2013년 디자인 그대로인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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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손해보험(주)
- ~0.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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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한국
- 롯데손해보험은 2008년 62년 전통의 손해보험 전문기업 대한화재해상보험을 롯데가
인수하면서 새롭게 출범한 금융전문기업입니다.
롯데손해보험은 장기보험, 연금보험, 자동차보험, 화재보험, 해상보험 등 손해보험 전반에
걸쳐 고객의 니즈에 맞춘 다양한 상품 개발에 앞장서고 있으며 설계사와 대리점 조직을
통한 전통적 판매 채널은 물론 전화와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전문 채널, 은행을 통한
방카슈랑스 채널, TV를 통한 홈쇼핑 채널 등 고객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접점을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아울러 고객 만족 콜센터를 통한 ‘24시간 바로 처리 서비스’와 보상요원을 통한 ‘해피카
서비스’, ‘전문 모니터링 서비스’, ‘현장 출동 서비스’ 등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다양하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롯데그룹이 보유한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등 국내 최고의 유통 서비스망을 적극 활용, 고객이 편리하게 접할 수 있는 보험 서비스 개발에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롯데손해보험은 고객 한분 한분의 금융자산에 대한 최적의 컨설팅으로 고객의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다하며 고객의 밝은 미래와 함께하는기업, 고객을 섬기는 기업으로 발전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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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증권거래소
B
- ~5.4km
-
[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 한국거래소는 유가증권시장, 코스닥, 파생상품시장 등 국내 증권 관련 거래를 총괄하는 거래소이다. 증권사 등 금융기관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세운 민간기업이나 거래소의 특성상 정부의 통제를 어느 정도 받는 공적 기관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증권거래소의 모태는 일제 강점기 때 인천에서 열렸던 미두시장이었다. 이 시장에서는 땅문서 등 고전적 의미의 증권이 거래됐다. 1930년 일제가 총독부령으로 서울에 정식 증권거래소를 세웠다. 당시 국내 증권거래 시장은 일본 회사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해방 직후 증권거래소는 폐쇄됐고 증권회사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 국채와 땅문서,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귀속재산 증서 등 당시 주로 거래되던 증권의 원활한 매매가 이뤄지지 않자 정부가 정식으로 증권거래소 설립을 추진했다. 1953년 대한증권업협회가 출범했고 1956년 금융회사와 증권회사가 공동으로 출자해 대한증권거래소가 세워졌다. 대한증권이 국내 1호로 증권업 허가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서울, 신우, 한흥, 신영, 한양, 부국, 신흥증권 등이 증권 매매를 시작했다. 1963년 증권거래법이 개정되면서 대한증권거래소는 정부 출자기관으로 바뀌었다. 이름도 한국증권거래소로 변경됐다. 1987년 증권거래법이 다시 바뀌면서 민간 출자기관으로 환원됐다.
1996년 증권업협회가 주도해 코스닥시장이 문을 열었다. 당시 코스닥시장은 증권거래소가 운영하던 유가증권시장과는 별개로 운영되는 시장이었다. 또 선물(先物) 거래는 부산에 본부를 둔 한국선물거래소가 주도하고 있었다. 세 시장이 따로 운영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여론에 따라 2004년 한국증권선물거래소법이 새로 만들어졌다. 이 법을 근거로 2005년 세 시장을 아우르는 통합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출범했다. 2009년 지금의 한국거래소로 이름을 바꿨다. 주요 업무는 증권과 장내 파생상품시장을 운영하고 시장 감시 등 각종 제도를 집행하는 일이다. 각 시장을 운영하는 유가증권시장본부, 코스닥시장본부, 파생상품시장본부 등과 시장감시위원회 및 경영지원본부로 조직이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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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
- ~1.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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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증권/투자]
서울 중구 남대문로2가
- 예금, 대출, 인터넷 뱅킹을 주요 업무로 하는 국내 시중은행. 1963년 2월 서민경제의 발전과 향상을 위해 제정된 국민은행법(법률 1201호)이 공포됨에 따라 국민은행이 세워졌다. 1960년 이전까지 사설 무진회사가 1500여 개 난립하고 파산이 잦아 서민들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서민금융제도를 확립하고 무진회사를 서민금융 전담금융기관으로 개편시키고자 1961년 말 국민은행법을 제정 공포했다. 1980년 9월 국민카드 발급업무를 시작했다. 1984년 10월 국민리스, 1986년 11월 국민기술금융을 설립했다. 1987년 9월 국민신용카드를 설립하고, 1989년 2월 신탁업무 취급을 시작했다. 1991년 10월 룩셈부르크 현지법인, 1992년 11월 도쿄지점, 1994년 3월 싱가포르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1994년 4월 총 수신 20조 원을 넘어섰으며, 1994년 9월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1995년 1월 국민은행법이 폐지됨에 따라 민영화됐다. 1997년 3월 국민선물을 설립했다. 1998년 6월 대동은행의 자산 및 부채를 인수했으며, 같은 해 12월 한국장기신용은행(납입자본금 1조 3815억 원)을 합병했다. 2001년 3월 국내 금융기관 최초로 총 자산 100조 원을 넘어섰다. 2001년 4월 주택은행과 합병했으며, 같은 해 7월 김정태 은행장이 ‘주택 국민 통합은행장’으로 선정되었다. 김 행장은 ‘장사꾼 은행장’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국민은행을 흑자 은행으로 만들었다. 1998년 당시 국민은행은 2900억 원의 적자를 냈으나, 이후 4년간 4500억~1조 3000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2002년 5월 <파이낸셜 타임스>지 선정, 국내 금융권 최초로 세계 500대 기업에 진입했다. 2002년 12월 온라인 연합복권인 로토(Lotto)를 발행했다. 2003년 9월 국민카드를 합병했다. 2005년 4월 국내 최초로 모바일 증권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9년 11월 국내 금융권 최초로 IT서비스 전 부문에 대한 ‘IS/IEC 27001’ 국제 인증을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