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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 싼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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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三间房
  • sān jiān f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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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오락 > 역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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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베이 청더 롼핑현 三间房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901.6km
◆ 1780년 8월 8,9일

◆ 1780년 8월8일, 여기 고북구(古北口)를 벗어난 반간방(半間房)에서 종점 열하까지는 마지막 한 구간이 남았다. 연암 일행은 73일간의 물불 가리지 않은 고행에 지칠 대로 지쳤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고꾸라지기 직전이었다. 특히 하인들은 북경에서 여기까지 무려 나흘간 눈 한 번 붙이지 못하고 가다가 멈추면 선 채로 꾸벅꾸벅 졸면서 여기까지 왔다.

◆ 내일이면 조선은 물론 아시아, 나아가서 세계의 관심을 모은 청나라 건륭황제의 이궁(離宮)에 도착한다. 멀리 조선 반도의 한양으로부터 바리바리 싸 온 공품을 올리면서, 우리 정사·부사·서장관 3사가 꾸벅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3배9고두(三拜九叩頭), 그 진하(進賀)의 예식을 준비해야 한다. 그 절을 위해 300명의 수행이 장마를 뚫고 일망무제의 들판을 건너왔다.

◆ 그것은 전쟁이었다. 육체만 소진하는 싸움이 아니라 조선의 국력과 자존심을 쏟으면서 의식과 사상 그 모두를 투여하는 싸움이었다. 크게는 조선과 청, 두 나라의 정치·경제·풍속·문화·군사·제도 등의 두드러진 차이로부터, 작게는 현실 외교와 전통 외교, 성리학과 실학, 화이론(華夷論)적 명분론과 유정유일(唯精唯一)의 실세론, 훈척(勳戚)파와 서민파, 권위주의와 실용주의, 고문(古文)정통과 문체자유, 신분주의와 인간주의의 크고 작은 모순과 갈등을 연암은 도강(渡江)한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44일 동안 아프도록 삭여온 것이다. 말하자면 신체적 피로 외에도 겹겹의 스트레스와 갈등을 떠안았던 것이다.

◆ 연암은 그날 일기에 “눈시울이 구름장처럼 무겁고 하품이 조수 밀리듯 한다”고 했다. 안장에 기대니 포근한 잠이 엉겼고 아롱아롱 꿈속에 둥둥 흔들리면서 취중의 세계, 몽중의 세계를 즐기고 있었다. 얼마나 환상인가. 연암은 그 경지를 종교나 철학에 견주었다. 도가(道家)로는 내관(內觀), 곧 자기의식을 의도적으로 성찰하는 수행에 견주었고, 불가(佛家)로는 팔십일난이나 사백사병(四百四病) 등 중생이 도를 터득하기 위한 온갖 장애와 질병의 극복에 비유했다. 연암이 이러한 고난의 연속, 그 수렁을 차라리 장주(莊周)도 호접(蝴蝶)도 아닌 꿈나라로 여기면서 즐기는 여유는 초극(超克)적인 정열의 향연이랄 수밖에 없다.

◆ 고북구의 동서로 뻗은 장성 그 북쪽을 뚫고 지나가는 국도 101번을 따라 나서면 당장 조하(潮河)를 만난다. 이 강은 머지않아 밀운(密雲)댐으로 흘러든다. 조하를 건너 한참 북진하면 파커스잉(巴克什營) 톨게이트, 톨게이트를 지나면 반간방(半間房)·삼간방(三間房)이라 하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그리고 삼간방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커다란 관광지 안내판이 앞을 가로막는다. 바로 금산령(金山嶺) 장성 입구에 닿는다.

◆ 그런데 장성 안내판은 고북구 남방 10km쯤에서도 보였다. 바로 사마대(司馬臺) 장성의 입구인 것이다. 사마대장성이나 금산령장성은 우리가 산해관이나 북경의 팔달령(八達嶺)에서 본 장성과 그 건축 양식이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지방의 수입을 올리기 위해 지역에 따라 보수 공사를 벌인 뒤 관광지로 선포하는 듯했다. 따라서 파커스잉 톨게이트나 금산령·사마대장성 등은 연암이 볼 수 없었던 경물이다.

◆ 반간방·삼간방은 작은 두메였다. 연암이 8월9일 새벽, 여기서 밥을 지어먹고 쉬었다. 그때는 겨우 말이나 지났음직한 오솔길이었으리라. 더구나 삼간방은 지금 벽돌집 세 채만 남아 있어, 그 이름을 실감케 한다. 그 건너편에 호두산(虎頭山)이 솟았는데 거기 산꼭대기에도 뾰죽한 바위가 꽂혀 있었다. 그런데 밀운을 벗어나면서 가로질러 달리는 연산산맥 그 물결은 마치 깃대들을 세운 바위 같았다. 연산산맥은 물론 열하의 동서쪽에 자리한 봉추산과 쌍탑산에도 돌올한 바위가 마치 다듬잇방망이나 제주도의 돌하르방 같았다. 그리고 지명이 재미있다. 가옥 구조를 말하듯 반칸·두칸·세칸, 그랬다. 빙긋이 웃음이 났다. 현재 나와 있는 ‘열하일기’ 몇몇 번역판은 ‘반칸 방에서 밥을 지어 먹고 세칸 방에 와서 쉬었다’고 옮겼는데, 실제로 반칸, 세칸은 모두 고유명사다. [참조 : 허세욱 교수의 新열하일기] ◆ 사진 : 진산령만리장성(金山岭长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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