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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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 피서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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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
    현지어
  • 避暑山庄
  • bì shǔ shān zhuāng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허베이 청더 청더시구 山庄东路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864.9km
◆ 1780년 8월 11일

◆ 정사의 황제 뵈온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 황제께서 알현할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리고, 잠시 후에 사신을 만나보겠다는 황제의 명령이 있어서 ... 황제가 정문에 나와 문 안의 벽돌을 깐 곳에 앉았다. 의자를 베풀어 놓지않고, 다만 평상에 누른 보료를 깔아 놓았을 뿐이다. 좌우에 시위하는 사람들은 모두 누른 옷을 입었는데, 칼을 찬 사람은 서너 쌍에 지나지 않고, 누른 일산(日傘)을 들고 선 사람이 두 쌍이다. 모두 숙연하여 조용하였다.

◆ 먼저 회교도의 태자를 앞으로 나오라 하여 황제가 몇 마디 물어보고는 곧 물러가게 하고, 다음에는 사신과 세 통사를 앞으로 나오라 하여, 모두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 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무릎을 땅에 대고 엉덩이를 붙이지 않는 예법이다. 황제가 물었다.

◆ "국왕께서는 안녕하신가?" 사신이 공손히, "예, 안녕하시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황제가, "만주어에 능한 사람이 있는가?" 하고, 물어 통사 윤갑종이 만주어로, "조금 아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황제는 좌우를 돌아보며 기뻐 웃었다.

◆ [임성삼의 주(註); 역대의 청나라 황제들이 만주어를 지속시키려 노력하였으나 중원에 사는 만주인들은 이 후에 곧 만주어를 모두 잊었다. 현재는 만주에 사는 만주인들도 자기민족의 말을 거의 잊어버리고 중국말과 비슷하게 변형시키어, 청나라 초기와 중기에 만주어로 기록한 여러 문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청나라 초기에 한 만주의 한 부족이 청나라의 서쪽 끝으로 이주 명령을 받다 국경을 지키며 자리를 잡고 현재까지 살아왔다. 이 부족 수천 명 만이 전통적인 만주어를 말하고 있다. 현재 이 사람들 중 똑똑한 사람들을 북경으로 불러와 청나라의 만주어 문서를 번역시키고 있다고 한다.]

◆ 황제는 모나고 흰 얼굴에 누른 기운을 약간 띠었고, 수염이 반백이라, 모습이 60 은 되어 보이는데, 온화하여 마치 봄바람이 살랑이는 듯 화기가 감돈다.

◆ 사신이 황제의 앞에서 물러나 반열(班列)에 드니, 무사 예닐곱 명이 차례로 나아가 활을 쏘는데 한 대를 쏘고는 반드시 꿇어앉아 큰 소리로 외쳤다. 과녁을 맞춘 자가 둘인데 그 과녁이 우리나라의 주름진 가죽 같고, 한가운데 무슨 짐승 하나를 그렸다. 활쏘기가 끝나자 황제는 곧 내전(內殿)으로 들어가고 ,,,

◆ 8 월 13일
[이 사행(使行)의 목적인 황제의 생일이다. 사신은 하례하는 자리로 가고 연암은 근처를 구경한다.]

◆ 이 날 음식을 세 차례 내렸고, 또 사신에게 자기(瓷器) 다호(茶壺) 하나, 잔대를 곁드린 다종(茶鐘) 한 벌, 등으로 얽은 빈랑(檳 ; 열대 과일, 빈랑나무의 열매, 성질은 온(溫)하며 심복통(心腹痛), 각기 충심(脚氣衝心), 적취(積聚), 설사, 두통 등에 쓰이며 구충제로도 쓰임) 주머니 하나, 칼 한 자루, 주석 차항아리 하나를 하사했다. 또 저녁 무렵에 젊은 내시 한 사람을 보내 주석으로 만든 네모난 항아리 하나를 내렸다. [여지라는 열대 식물의 즙(汁)이었다.] [참조 : 임성삼의 열하일기 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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