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28
  • 언어선택
간송미술관
+
  • 02-762-0442
1234
    현지어
  • 간송미술관
  • Kansong Art Museum
    분류
  • 전시/극장 > 박물관
    주소
  • 서울 성북구 성북동 성북로 102-11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4.8km
훈민정음 혜례본에서 신윤복의 미인도까지 간송미술관은 1년에 딱 두 번 5월과 10월에 문을 연다.소장품을 중심으로 기획전을 열어 보름 정도 관람객을받는다. 보통 박물관은 전시를 주된 업무로 하지만간송미술관은 미술사 연구가 주업무인 까닭이다.하지만 1년에 두 번뿐인 간송미술관의 전시를 손꼽아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그 전시의 면면이 6개월을기다린 보람을 느끼기에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2006년 5월에는 간송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가 있었다.당시에 간송미술관의 최고 걸작들이 대거 출현했다.간송미술관의 걸작이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최고의문화재들이었다.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70호이자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 혜례본,국보 제72호 금동계미명삼존불, 국보 제135호 신윤복의풍속화첩 등 초등학생에서 노인들까지 대한민국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지난 2008년 김홍도와 신윤복을 주인공으로 하는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인기를 끌었을 때는 그해 10월전시에 신윤복의 ‘미인도’를 공개했다. 2009년 5월전시는 <겸재 서거 250주년 기념 겸재화파전>이었다.겸재 정선의 작품 80점과 그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심사정, 김홍도, 신윤복의 그림도 함께 전시했다.전시의 수준이 이쯤 되다 보니 1년에 단 두 번만 문을열어도 그 명성을 이어가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 문화재 지키기의 독립 운동사 수준 높은 한국 미술품을 보유한 간송미술관에는건립자 전형필의 공로가 숨어 있다. 간송(澗松)은 그의호이기도 하다. 본래 종로 거부 전응기의 유일한상속자였던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의제자로 독립운동가 오세창을 소개받으며 인생의전환기를 맞았다. 두 사람의 영향으로 그는 자신의 전재산을 바쳐 우리 문화재 되찾기에 힘썼다. 1934년에미술 연구 기관 북단장(北壇莊)을 세우고보화각(保華閣)을 설립해 이를 위한 학술 기반을마련했다. 이 가운데는 우리 민족 최고의 작품들이많다. 고려청자의 상징인 국보 제68호청자상감운학문매병도 그의 노력으로 되돌아왔다.그는 일본인 골동품상 마에다 사이치로에게서 2만 원에구입했는데, 이 돈은 당시 기와집 스무 채를 살 만큼큰돈이었다. 훈민정음 혜례본 역시 문화적 의미가 중요하다.훈민정음 원판으로 한글 창제의 증거품이다. 국보1호로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만큼 값진문화재다. 그는 한국전쟁 때 피난을 떠나면서도훈민정음 혜례본만은 몸에서 떼지 않았다. 현재간송미술관은 국보 12점, 보물 10점을 소장하고 있다.아직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문화재가 있을것으로 짐작된다. 1966년에는 한국민족미술연구소가 북단장의 가치를이어받았다. 1971년부터는 소장품만으로 5월과 10월간송미술관에서 두 차례 기획 전시를 열어왔다.관람료는 무료이나 전시 기간에 간송미술관의 국보급문화재를 모두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하나의테마 아래 이뤄지는 기획 전시이며 아울러 전시 기간외에는 일절 개방하지 않는 값비싼 전시인 셈이다.하지만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 시대 최고의 작품을 볼수 있다면 그것이 단 두 번인들 어찌 불평하겠는가.외국인 친구가 있다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소개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 우리나라 최초의 건축설계사 박길룡이 설계한 간송미술관 외관* 1년에 두 차례 문을 여는 간송미술관 입구의 해태상* 길은 장명등을 지나 미술관 입구까지 이어진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지켜낸 우리 문화 유산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다.* 고려시대로 추정하는 3층 석탑* 신라 말 고려 초의 석불좌상은 얼굴이 심하게 손상된 채 뜰 한쪽을 지키고 있다.* 석불에 후광을 만들었던 광배처럼 미술관 곳곳에 우리 문화재가 숨쉰다.* 미술관 뜰에 세워놓은 3층 석탑은 서울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다.* 우리 문화재의 보물 창고 간송미술관으로 들어서는 입구* 간송미술관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자리한 무인상보화각 | 훈민정음 원판 | 미인도 | 간송미술관 |공간개요 간송미술관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전형필이 세운 국내 최초의 민간 박물관이다. 미술 연구 기관 북단장(北壇莊)의 부속 미술관 보화각(保華閣)을 전신으로 하며 1966년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부속 미술관으로 발전했다.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혜례본,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국보만 12점을 소장하고 있다. 1년에 5월과 10월 단 두 차례 보름 정도만 문을 여는데 그 기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들이 적잖다.주차시설 자체 주차장은 없음 성북 초등학교 운동장에 주차 가능이용시간 매년 5월과 10월 중순 10:00 ~ 18:00 약 2주의 전시 기간만 개관 사전 확인 요망부대시설 국보급 문화재 보유관광팁 박길룡이 설계한 미술관 미술관 건물이 빼어난 건축 미학을 자랑하는 건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간송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건축설계가로 여겨지는 박길룡이 맡았다. 그는 화신백화점, 구 서울대학교 본관 등을 설계하기도 했다. 간송미술관은 정문 앞에 원통형 돌출 입구가 있는 하얀색 2층 양옥이다. 간송미술관은 지금도 개관 당시의 내외부 전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최순우 옛집 성북동의 간송미술관 가까이에는 최순우 옛집이 있다. 그는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을 지냈으며 라는 책을 썼다. 최순우 옛집은 그가 1976년부터 1984년 사망하기까지 살았던 집으로, 우리 문화를 지키고 사랑한 또 한 사람의 문화인을 만날 수 있다.
주변뉴스
< 1/2 >
주변포토
< 1/2 >
동종 정보 [내위치에서 4.8km]
실시간 관심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