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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현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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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392-5018
1234
    현지어
  • 약현성당
  • yakhyeonseongdang
    분류
  • 기관/단체/종교 > 종교
    주소
  • 서울 중구 중림동 149-2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0.5km
천주교 신앙의 약초밭, 약현(藥峴)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으로 명동성당을 기억하는이들이 많다. 그러나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본당이고, 가장 먼저 지어진 성당은 바로 중림동약현성당이다. 서울의 두 번째 본당이지만 건축 시기로보면 명동성당보다 6년 빠른 1892년에 지어졌다.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맺어지면서 천주교는비로소 종교의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이에 앞서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 병인박해(1866)를거치면서 수많은 천주교 신도들이 순교했다. 서소문은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인 이승훈 등 수많은 이들이숨져간 천주교의 성지였다. 당연히 서소문 일대에는천주교 신자가 급증했고 1887년에는 명동 본당 산하의공소를 설립했다. 약현성당의 전신이었다. 당시명동성당을 문안본당, 약현성당을 문밖본당이라했는데 1890년에는 문밖본당의 신자 수가 문안성당을넘어섰다. 약초밭이 많아 약현(藥峴)이라 불리던동네에서 우리나라 천주교의 약초와도 같은 성당으로성장한 것이다. 이에 두세 신부가 약현본당의 초대 주임 신부로부임하며 약현성당을 지었다. 우리나라 최초의성당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었다. 설계는후에 명동성당 설계도 맡았던 코스트 신부가 했다. 약현성당은 1892년에 지어졌지만 추후에도 계속해서성당을 중건했다. 1905년에는 첨탑과 종을 달았고1921년에는 성당 내부의 벽돌 기둥을 교체했다. 광복후에는 1974년 한 차례 해체 복원 공사를 했으나 1998년취객의 방화로 전소에 가깝게 훼손되고 말았다. 그리고2000년 9월 복원하면서 1892년 지었던 원형에 좀 더가까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순교의 의미를 기리다 중림동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약현성당은 중림동의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수산시장 거리를 따라이어지는 보도와 접해 그 입구를 찾기가 좀처럼 쉽지않다. 워낙 오랫동안 한자리에 있었던 터라 오히려 그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을 정도. 그저 평범한성당 정도로 여기는 이도 적잖다. 보도에서 골목을 따라 오르막길로 들어서면 약현성당초입의 ‘기도동산’이 나온다. 작고 아담한 숲으로이름 그대로 기도하는 동산이다. 길을 따라서는 예수의십자가 고난을 그린 십자가의 길 14처가 있다. 14개의돌에 고난의 이야기를 그려넣었다. 그 길의 끝에 약현성당이 있다. 웅장하거나 화려한대성당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정갈한 적벽돌의 고딕 양식은 성스러움을 갖는다. 가로32m 세로 12m의 사각 틀 안에 존재하지만 성당이 갖는가치는 그 좁은 틀 안에 가둬둘 수 없다. 내부는 삼랑식으로 중앙 신도석과 양쪽 통로로나눠지는데 신도석이 통로 폭의 2배다. 1921년까지는남녀를 구분하는 칸막이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칸막이도 없고 당시 벽돌 기둥 대신 교체했다는 돌기둥도 복원했다. 본당 옆에는 약현성당 건립 100주년을기념해 세운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도 있는데 순교성인의 유해와 위패를 모시고 있다. * 약현성당은 벽돌조의 고딕 성당으로 번잡스러운 장식이 없어 장중한 느낌을 준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교회로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벽돌을 사용해 지어졌다.* 유럽 고성당의 웅장함과 경건함을 연상케 하는 약현성당의 본당 모습* 본당으로 올라가는 십자가의 길* 약현성당 후문에 세워져 있는 요셉상* 약현성당은 오후가 되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로 성당 안이 풍성해진다.* 뾰족 아치형의 천장이 고풍스러운 본당*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운치 있다.유적지 | 문화재 | 중림동성당 | 중림동 | 순교 |명동성당 | 악현성당 |공간개요 1892년 천주교의 성지 서소문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이다. 명동성당에 이은 서울 내 두 번째 본당이지만 성당의 건립은 약 6년 정도 빨랐다. 약현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1998년 취객의 방화로 거의 전소했고 2000년 9월 복원했다. 다행히 처음 지었을 때의 모습과 좀더 가까워졌다.주차시설 주차 공간이 있으나 혼례용으로 주로 사용되므로 주차하기 힘듬이용시간 미사 시간 전후로 성당 개방하지 않음부대시설 가명유치원, 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 외유적지 지정 사적 제252호지정 내역 1892년 11월 9일 약현 준본당에서 약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가 이후 중림동 본당으로 개칭되었다. 1887년 블랑 주교에 의해 시작된 교리 강습소가 이후 약현 공소로 변모하였다. 교세가 빠르게 확산되어 뮈텔 주교의 동의를 얻어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1891년 10월 성당 정초식을 거행한 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서울대교구의 두 번째 본당이며 1892년 9월 한국 최초의 서양식 벽돌조 건물이 완성되어 1893년 4월 23일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한국 최초의 고딕식 건물로 근대 건축사의 중요한 가치를 지녔으나 1998년 2월 11일 화재로 첨탑과 성당 내부가 완전히 훼손되었다. 이후 복원 공사를 거쳐 2000년 9월 17일 정진석 대주교의 집전 하에 본당 봉헌식이 거행되었다.관리기관 서울대교구관광팁 서소문공원 순교 미사 약현성당에서 길을 건너 서소문사거리 방면으로 100m쯤 가면 서소문공원이 있다. 천주교 성인 44인이 순교한 성지다. 공원 한가운데는 이를 기리는 기념탑이 자리한다. 약현성당에서는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에 서소문 순교 성지에서 순교자를 위한 미사를 거행한다. 천주교 신자나 순교의 의미를 기리고 싶은 이들은 참석해도 좋을 듯하다. 서소문공원 순교 미사 명동성당 명동성당과 약현성당은 모두 코스트 신부의 설계로 이뤄졌다. 약현성당은 지어진 시기가 빨랐고 명동성당은 본당이라 좀더 웅장하게 지어졌다. 두 성당의 건축 양식을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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