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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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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753-0001
1234
    현지어
  • 정동제일교회
  • jeongdongjeilgyohoe
    분류
  • 기관/단체/종교 > 종교
    주소
  • 서울 중구 정동 34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1.0km
붉은 벽돌로 쓴 역사서 덕수궁 돌담길로 유명한 정동길은 서울의 유명산책로 중에서도 유서와 관록이 스민 길이다. 봄과가을의 낭만적인 정취 외에도 길 곳곳에서 수십 년에서수백 년 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근현대사를가로지르는 다양한 건축물들이 길을 따라 이어지기때문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쭉 올라와 모퉁이를 돌면좌우로 정동극장과 서울시립미술관을 끼고 있는아담한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정동길 한복판에서 100년넘게 파란만장한 역사를 거쳐온 정동제일교회다.명성황후가 시해된 뒤 이 교회를 세운 선교사아펜젤러(1858∼1902)가 주도해 추도 예배가 거행되던곳이었고, 3.1운동 때는 예배당 마룻바닥의 지하실에서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몰래 만들던 역사 현장이기도하다. 나도향, 전영택 등이 작품 활동을 하고 주요 문학동인지가 탄생한 무대이기도 하며 소설의 배경으로도등장했다. 이토록 오랜 역사 속에 있었던 정동제일교회를혹자는‘벽돌로 쓴 역사서’라고 부르기도 한다.구한말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정동제일교회를중심으로 한 정동길을 따라 일어났으니 이곳에서근현대사를 탐방해볼 만하다. 소박한 건축미에 담긴 역사의 발자취 고딕풍의 간소한 건축물에서 붉은 벽돌이 세월의향내를 물씬 풍긴다. 교회 안에 들어서자마자 바로눈에 띄는 건물이 벧엘예배당이다. 선교사 아펜젤러가남긴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동제일교회는 역사를 품고 있는 장소로서 의미도크지만 건축 가치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일반 고딕교회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뾰족 첨탑을 삼각형의박공 지붕 형태로 대신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한국의 전통적인 기법으로 만든 현관 계단의 기단석을밟고 올라서면 예배당 내부가 드러난다. 기둥도,천장도 모두 간결하고 소박하다. 사방에 뚫린유리창에서 자연광이 쏟아져 들어온다. 일반적인 고딕형태보다 단순하게 짜인 격자무늬 장식 창은 이후 다른교회 창문의 모형이 되었다. 1918년 이 교회에 봉헌된한국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은 한국전쟁 때 파손되었다.현재는 복원된 상태로 남아 있다. 처음 예배당을 지었을 때는 얇은 휘장을 사이에 두고한쪽은 배재학당 남학생이, 다른 한쪽은 이화학당여학생이 따로 마룻바닥에 앉아 예배를 보았다고 한다.그들도 이 공간을 터전으로 민족운동을 한주인공들이다. 이렇게 근대화와 개신교의 발상지가 된정동제일교회는 근현대사의 발자취를 되짚어볼 수있는 소중한 문화재다. * 1897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개신교 건물 정동제일교회* 예스러운 의자 세 개가 마치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듯하다.* 정동제일교회 예배당 내부 모습* 정동제일교회의 오래된 역사를 말해주는 증거* 예배당 내부의 고딕 양식이 드러나는 아치형 출입문* 교회 마당에 있는 최병헌 목사의 동상유적지 | 문화재 | 아펜젤러 |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극장 | 덕수궁돌담길 | 이화여고 박물관 | 배재학당| 정동제일교회 | 정동교회 |공간개요 1897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 건물이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19세기 교회 건물로 사적 제256호로 등록되어 있다. 초창기에 벧엘예배당이라 불렸던 정동제일교회는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바로 옆에 있어서 개화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현재‘한국 감리교의 어머니 교회’로 불리며, 교회 건물 안에는 100여 년의 숱한 기록들이 담겨 있다. 정동교회로도 불린다.주차시설 주차 공간이 있으나 주로 결혼식 관계자 외에는 사용이 어려움 인근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주차장 이용 가능이용시간 만곤 기독교 역사자료실 (사전 예약 필요) 화 ~ 금요일 10:00 ~ 17:00, 토요일 10:00 ~ 14:00 예배와 기도 일정에 따라 이용 시간에 차이가 있음외국어 안내 영어 예배 프로그램 외외국인참여프로그램 영어 예배 프로그램 외유적지 지정 사적 제256호지정 내역 정동제일교회는 개신교가 이 땅에 보급된 후 가장 먼저 세워진 교회다. 1885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Appenzeller)는 우리 나라에 입국하여 배재학당을 세워 한국의 근대교육을 시작하였다. 그는 학교에서 종교 활동을 하였으나 예배만을 위한 건물을 구입하여 벧엘(Bethel)예배당이라 하고 1887년 첫 예배를 시작하였다. 교인들이 늘어나면서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 건립이 필요하게 되자 1895년 공사를 시작하여 1897년 12월 26일 봉헌식을 가졌다. 이 건물이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19세기 교회 건물이다. 이 건물은 구조는 단층이지만 층고가 높아 2층으로 보이고 남측 종각은 3층 높이로 지어졌다. 미국식의 단순화된 고딕 양식으로 건립 당시의 사진을 보면 이웃한 기와집이나 덕수궁과 잘 어울린다. 이곳에서는 많은 토론회와 음악회 등이 열려 신문화 수용과 민족 의식 고취에 크게 공헌하였다. 본래는 십자형으로 380.16m²(115평)였으나 1926년 증축 때 양쪽 날개 부분을 넓혀 현재는 578.5m²(175평)의 네모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원래 건물은 그대로 두고 양 날개 부분만 늘려 지었기 때문에 건물의 모습에는 손상이 없다. 벽돌 쌓기를 하였으며, 곳곳에 아치형 창문을 내어 고딕 양식의 단순화된 교회당 모습을 이루고 있다. 돌을 다듬어 반듯하게 쌓은 기단은 조선 시대 목조 건축의 솜씨가 배어 있어 주목된다. 이 교회당의 종은 장식 없는 내부 기둥의 겉모습과 함께 소박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관리기관 문화재청관광팁 정동의 역사가 한눈에 보이는 바닥 지도 교회 건물 앞의 원형 로터리 광장 바닥에는 정동의 옛 지도가 그려져 있다. 타일에 박힌 이 지도에는 18세기 중엽, 구한말, 해방 후, 현재의 정동으로 나뉘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온 정동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동안 못 보고 지나쳤다면 교회에 들어서기 전 한번쯤 눈을 돌려보자. 배재학당, 이화여고 박물관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은 정동교회와 뗄 수 없는 관계다. 이화여고 박물관에서는 근대화 시기 이화학당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교실과 이화여고 역사를 살필 수 있다. 주변에 유관순 우물터도 있다. 정동제일교회 뒤편 배재학당은 2008년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내부에는 유길준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서유견문 등 고문서와 당시 문서, 사진 등이 있다. 예약하면 설명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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