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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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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2147-2000
1234
    현지어
  • 풍납토성
  • pungnaptoseong
    분류
  • 음식점/커피숍 > 한식
    주소
  • 서울 송파구 풍납동 26299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13.2km
2000년의 잠에서 깨어나다 송파구에는 백제 토성이 두 곳 있다. 몽촌토성과풍납토성이다. 몽촌토성은 지난 1986년 올림픽공원을조성할 때 발굴된 후 시민들의 쉼터로 사랑받는다.풍납토성은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됐다. 아파트재건축 공사를 위해 터를 다지던 중 백제 시대 유적과유물이 다량으로 나왔다. 아파트 공사는 잠정 중단되고토성의 발굴이 진행됐다. 2000년에는 인근의 다른 공사 현장에서 중국 동전과토기 등이 또 다량으로 발견됐다. 또한 거대한 규모의성벽과 제사유적 등이 차례로 확인돼, 한성백제 시대의토성으로 몽촌토성보다 앞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있다. 풍납토성의 발견은 당시가 처음은 아니다.일제강점기인 1925년 대홍수가 났고 토성의 서벽이무너지면서 그 내부가 노출됐고 여러 점의 유물이발굴됐다. 광복 후에 사적 제11호로 지정됐지만 그위상의 변화는 없었다. 1966년 서울대학교 고고학과에서부분 발굴조사를 펼쳐 선사 시대와 삼국 시대 사이의토성임을 밝힌 정도다. 고대사를 뒤흔들 단서 실상 풍납토성을 찾으면 그다지 볼품은 없다. 길쭉한제방이 아파트촌과 상가들을 크게 둘러안는 형국이다.그마저도 중간중간 길이 끊겨 있다. 토성의 존재를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경계 표시만 없다면 그저 너른잔디밭만 같다. 그 둘레가 약 3.5km에 달한다. 한강과 나란하며남북으로 약 2km, 동서로 1km에 이르는 타원형이다. 1925년대홍수 당시 서벽의 상당 부분이 유실돼 현재는 약 2.7km구간만이 토성의 자취를 보여준다. 지금이야 순식간에축조할 수 있지만 당시로는 대규모의 공사다. 토성의축조 방법을 보면 실감이 간다. 토성 동쪽의 단면을 연구한 결과 돌은 없고 얇은모래를 겹겹이 다져 축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경우공사에 동원된 인력은 최소 수십만 명 이상이다. 성을쌓은 백제가 고대 국가의 통치력을 가졌음을 의미한다.그 축조 시기기 기원전에 가까우니 백제의 역사가 400년가까이 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이는 우리나라 고대사를뒤흔들 만한 중요한 단서다. 초라한 외양만으로규정지을 수 없는 풍납토성의 가치다. * 풍납토성비와 풍납토성의 전경* 토성 축성에는 당시 최소 수십만 명의 인력이 동원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재개발아파트 조성 중 출토된 유물들로 인해 그 가치가 증명됐다.* 토성 한쪽에는 근린공원을 조성해 시민들의 쉼터를 만들었다.* 풍납근린공원의 전경* 외부 경사면에는 2단으로 축조된 흔적이 있다.* 사적 지정 당시 경기도 광주시에 속해 공식 명칭은 광주풍납리토성이다.* 풍납토성은 겉보기와는 달리 우리나라 고대사를 흔들어놓을 단서를 가지고 있다.* 풍납토성은 유실된 구간으로 인해 현재는 단절된 채 존재한다.* 총 3.5km에 달했으나 지금은 2.7km 구간만 존재한다.토성 | 풍납리 | 문화재 | 유적지 | 올림픽공원 | 백제 |풍납토성 | 몽촌토성 | ate_idAC0106001000_2_공간개요 천호동에 있는 백제 시대의 토성이다. 약 3.5km의 토성으로 1925년 대홍수 때 일부가 유실돼 현재는 2.7km의 구간만 남았다. 1997년 재개발 공사 중 귀중한 가치의 유물이 출토됐고 풍납토성에 대한 연구도 다시 이뤄졌다. 한성 백제의 토성으로 우리나라 고대사를 연구하는 값진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공식 명칭은 광주풍납리토성이다.유적지 지정 사적 제11호지정 내역 백제의 시조인 온조가 처음 정착한 곳이 하남 위례성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 방이동 백제고분군, 석촌동 백제 초기 적석총 등이 백제의 한성 시대 흔적임에는 분명하다. 풍납토성은 서쪽으로는 한강이 면해 있고 남쪽으로는 몽촌토성으로 통한 길이 나 있다. 그리고 서북쪽으로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아차산성을 바라보며 동남쪽으로는 멀리 남한산성이 보인다. 한강의 천호대교 남단 옆에 있는 풍납토성은 백제 초기의 유적이다. 원래는 둘레가 3.5km에 달하는 큰 규모의 토성이었으나, 1925년 한강의 대홍수로 일부가 유실되고 현재는 약 2.7km만 남아 있다. 동편에는 출입문 터로 여겨지는 흔적 4곳이 남아 있으며, 특히 선사 시대부터 삼국 시대에 이르는 유적이 출토되어 백제 시대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최근에 활발한 발굴 작업이 이루어져 이곳이 백제 왕성이었다는 견해도 제시되고 있다.관리기관 송파구청관광팁 몽촌토성 몽촌토성은 풍납토성과 더불어 백제 위례성 시대의 대표적인 토성으로 평가된다. 올림픽공원을 조성하며 발굴이 이뤄졌다. 아직 완전히 복원되지 않은 풍납토성에 비해 비교적 잘 가꿔져 시민들의 산책로로도 애용된다. 풍납토성과 비교하며 걸어봐도 좋을 듯하다. 없음 암사동 선사주거지 인근에는 또 하나의 고대 유적이 있다. 신석기 시대의 대표 유적인 암사동 선사주거지다. 풍납토성과 마찬가지로 1925년 대홍수 때 일부 유적이 파손되기도 했다. 서로 다른 3개의 문화층이 발견됐는데 그중 제3층은 삼국 시대 백제의 흔적도 엿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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