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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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농얄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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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
    주소
  • 서울 동대문구 전농2동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8.2km
** 길이름 유래 : 근처에 전농중학교가 있음으로 인해 지어진 이름으로, 한국 하이틴 문화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1977년의 영화 ‘고교 얄개’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부산의 ‘부산얄개길’ 또한 근처에 부산중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얄개전(傳)’은 영화이기 전에 조흔파 선생의 소설로 이야기화 되어 있다.

** 스토리 : 한 달 전 중학교 2학년의 아들 담임선생님에게서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윤지민 어머니시죠? 지민이가 좀 다쳐서 병원에 있습니다. 오실 수 있나요?”

여자 담임선생님은 매우 조심스럽게 내 의향을 물었다.

“어쩌다가요? 얼마나요? 언제요?”

나는 다급하게 몇 가지 질문을 한꺼번에 던졌다. 담임은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다만 합의를 볼 일이 있어서.......’라며 뒷말을 흐렸다. 전화에 대고 시시콜콜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어서 미장원 문도 닫지 않은 채 학교 옆 병원으로 달려갔다. 대기실 앞에서 담임선생님이 나를 기다리다가 지민이가 있는 진료실로 데리고 갔다. 담임선생님도 아직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눈치였다. 진료실로 들어서자 지민이 머리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다가 나를 보자 침대에서 일어났다. 교복 와이셔츠가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엄마!”

“어떻게 된 일이야? 얼마나 다친 거냐고?”

지민을 보는 순간 나는 온 몸이 덜덜 떨려 걸음조차 제대로 떼어 놓지 못했다. 얼마나 다친 것인지 궁금해 간호사를 돌아보았다.

“뒷머리에 열 바늘 꿰맸어요. 뒤에서 돌을 맞았다더군요. 엑스레이 촬영을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별 다른 이상은 없다고 하시네요.”

“피를 얼마나 흘렸기에 옷이 피로 흥건합니까?”

“돌을 맞았을 때 머리가 깨지면서 피를 좀 흘린 것 같은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아이가 저 지경인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니 간호사의 무성의한 말에 화가 치밀었지만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는 일이 더 급했다.

“지민아, 어떻게 된 일이니?”

아이의 손을 잡으며 물었지만 지민은 대답이 없다. ‘저 좀 보시죠.’ 하며 담임선생님이 나를 밖으로 안내했다.

“무슨 일인가요?”

담임선생님은 잠시 멈칫거리며 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사실은 다 저 때문이에요.”

담임선생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가슴이 옥죄어오는 통증을 느꼈다.

지민은 여의도에 살다가 2학기 때 이 동네 학교로 전학을 왔다.

내가 여의도 미장원을 정리하고 이 근처에 미장원을 개업했기 때문이었다. 마침 참한 여선생님 반에 배정이 되어 다행이라 여기고 안심하던 참이었다. 담임선생님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여의도에서 머리 잘 한다고 소문났던 미장원이라는 말을 듣고 내 미장원 단골 고객이 되었다. 머리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어느 날 지민이 머리를 예쁘게 깎아서 보냈는데 선생님이 무심히 ‘지민이 머리 어머니가 깎아주셨니? 예쁘게 해 주셨구나. 내 머리랑 비슷하네.’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지민은 아이들의 표적이 되었다.

‘존나 왕재수. 담순이랑 미장원 동창 먹었삼? 열공한다고 뽀대나는 거 아니거덩 ㅆ ㅂ.’ (좆 나게 재수 없다. 여자담임선생과 미장원 동창 먹었느냐? 열심히 공부한다고 폼 나는 거 아니다. 씨발.)

선생님은 주머니에서 지민의 핸드폰을 꺼내어 문자 하나를 보여주었다. 무슨 뜻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는 단어들이었지만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느껴졌다.

“얼마 전부터 지민이가 휴대폰 왕따를 당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런 문자를 한 두 친구가 아닌 십여 명에게 받으면서 시달리고 있다는 걸 지민이를 좋아하는 여자 반 학생이 제게 알려줬어요.”

그날 담임선생님은 지민이의 휴대폰을 압수하여 쌓인 문자를 보았다. 종례 시간에 선생님은 수습에 나섰다.

“선생님은 우리 반에서 말로만 듣던 언어폭력이나 휴대폰 왕따가 나오는 것을 묵인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친구끼리는 서로 돕고 우정을 나누고 의리를 지키면서 살아야한다고 나는 배웠다. 자, 다 눈을 감는다. 스스로 친구를 괴롭혔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손을 들어라. 선생님만 알고 조용히 넘어가겠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신참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에 대해, 자신이 교사라는 것에 대해 실망감과 회의를 느꼈다. 그래도 끝까지 노력을 다해 보았다.

“좋다. 알았으니 손을 내려라. 지금 손을 든 사람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손들지 않은 나머지 학생도 선생님은 누군지 다 알고 있다. 약속대로 손든 사람은 용서하고 더 이상 벌을 주지 않겠지만 손들지 않았던 나머지 학생에게는 엄한 벌을 내릴 것이다. 각오해라.”

지민에게 문자로 괴롭힌 아이들을 찾아내려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아이들은 지민이가 담임한테 고자질을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민이 운동장으로 나서는 순간 어디선가 어른 주먹만 한 돌이 지민의 머리를 겨냥해 날아왔다. 돌을 던지는 장면과 지민이 쓰러지는 순간과 도망가는 아이들을 지민을 따라다니던 여학생이 휴대폰 동영상으로 모두 촬영을 했다. 아이들은 세 명이었다. 충격적인 것은 돌을 던진 아이가 지민 반의 모범생 반장이라는 사실이었다. 자기가 받던 총애를 지민에게 빼앗긴 것 같아 질투를 느낀 모양이라고 담임선생이 변명을 해주었다. 젊은 여선생의 미숙한 학생 지도가 화를 부른 것이었다.

“지금 세 아이 모두 생활지도 주임 선생님한테 붙잡혀 있어요. 학교 내의 문제로 그치느냐 외부 고발조치 하느냐는 지민이 어머니께 달려 있습니다. 얄개들 장난이 지나쳐서 생긴 일이고 걔들도 다 제 제자들인데......”

나는 선생님께 지민이의 휴대폰을 달라고 하여 저장된 문자들을 훑어보며 눈물을 흘렸다. 선생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민이가 그동안 당한 괴로움이 얼마나 컸는지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지민이는 무슨 마음으로 문자들을 개인보관함에 모두 저장해 놓은 상태였다. 이런 영문은 모르고 아이가 통 기운이 없어 보이고 밥도 잘 먹지 않아 유명한 홍삼 엑기스를 먹이고 있는 중이었다. 왕따 당해 살고 싶지 않은 아이에게 고기반찬이 무슨 소용이며 홍삼이 무슨 효과가 있단 말인가.

‘여친 있으면 장땡이냐? 개나발 불지마라. 감히 도촬을 해? 자꾸 꼬질러 바치면 점잖은 우리도 열라 화나지.’

방금 도착한 문자들이 속속 신호음을 보내왔다. 지민이가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구나. 나는 지민의 핸드폰을 코트 주머니에 넣고 일어섰다.

“지민이 데리고 가도 되죠?”

“가해 학생들 문제는.......”

담임선생님이 대기실에서 일어서는 나를 뒤따랐다.

“좀 생각해 봐야겠어요.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를 다시 할 겁니다. 우리 지민이 당분간 학교에 못 보냅니다.”

자식 키우는 엄마의 심정을 알 리 없는 젊은 여선생에게 ‘네가 이 찢어지는 어미 마음을 알아?’하고 소리치고 싶었다. 학교와 집이 너무 가까워서 차를 태우지도 못하고 나는 지민의 손을 잡고 걸어서 집으로 왔다.

“지민아, 이 길이 전농얄개 길이라고 저기 적혀 있네. 엄마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 얄개라는 건 이런 게 아니었어. 이건 얄개 짓이 아니라 범죄자들의 짓이지. 엄마 중학교 때 고교얄개라는 영화가 폭발적인 인기였는데.......”

“저도 봤어요.”

“그 옛날 영화를 어떻게 봤어?”

“디브이디로요.”

“그랬구나. 영화에서 본 거 외에도 교실 앞문 위에 분필가루 잔뜩 묻은 칠판지우개를 얹어 놓았다가 선생님이 문 열고 들어오면서 지우개를 뒤집어쓰는 거야. 아니면 수학여행 가서 주무시는 호랑이선생님 얼굴에 수성 펜으로 호랑이 모습으로 그려 놓기, 가방 속에 죽은 쥐 넣어 놓기, 고작해야 그런 정도의 장난이었어. 여학생 집 앞에 괜히 왔다 갔다 하는 게 좋아한다는 표현이었고.”

“엄마, 요새 애들은 안 그래. 좋아한다는 말도 여학생이 먼저 소문내고 자기가 찍어 놓은 남자 친구의 일거수일투족을 휴대폰으로 도촬해서 전송하고 그래요. ‘넌 내 손 안에 있으니까 꼼짝 마라’ 하는 뜻이죠. 얼마나 무섭다고.”

“지민아, 도촬이 뭐니? 아까부터 궁금했어. 너 좋아하는 여학생이 돌 던진 애들을 도촬했다고 하더라.”

“도촬은 ‘도둑 촬영’이라는 합성어의 줄임말이에요. 몰래 촬영했다는 거지.”

“그 여학생 너도 좋아하니?”

“아니. 너무 와일드해요.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날 따라다녀. 그날도 나를 도촬하려다가 우연히 돌 던진 애들을 촬영하게 된 거에요.”

“머린 괜찮아? 안 아프냐고. 큰 병원 가서 시티 촬영이랑 다 해보자.”

“괜찮아요. 숙현이가 ‘지민아, 머리!’하고 소리쳐서 머리에 뭐가 붙은 줄 알고 손으로 머리를 만지는 순간에 마침 돌을 맞은 거예요. 대신 내 예쁜 손등이 이렇게 깨진 거죠. 머리에 바로 돌 맞았으면 죽었을 지도 몰라요.”

“세상에....... 끔찍한 소리하지 마. 나는 네가 쓰러지면서 손등을 다친 줄 알았어. 그 여학생 이름이 숙현이니? 고맙지 뭐냐.”

여의도에 살다가 전농동으로 이사 온 것 때문에 왜 미운 털이 박혀야 하는지, 선생님이 내 미장원에 단골이라고 내 아들이 왜 왕따 당해야 하는지, 아프면서도 결석 한 번 않고 열심히 학교에 온다고 왜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지 나는 정말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괴롭게 왕따를 당하면서도 고생하는 엄마가 걱정할까봐 끝내 말하지 않은 아들이 이번 일로 더 왕따를 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엄마, 고교얄개에서도 두수의 장난이 지나쳐서 호철이가 병원에 입원하잖아요? 거기 비하면 난 입원도 안 했는데 뭘.......”

“친구들 더 이상 문제 삼지 말라는 말이지?”

지민이 머리를 끄덕였다.

“나 진짜 왕따 당하기 싫단 말이에요.”

나는 지민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사내아이라 그런지 벌써 내 키보다 훨씬 커버려서 아들의 어깨를 안는 일이 쉽지 않았다. 얄개 짓이라기에는 너무 대담하고 괘씸했지만 아들과 전농얄개 길을 걸으면서 지민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용서하기로 한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얄개들의 장난거리도 달라졌을 테지.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 아니라 대학교 2학년처럼 든든하게 느껴진다.

※ 그 길에 전농 중학교가 있어서 전농얄개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70년대에 ‘얄개’ 들의 모습과 요즈음 아이들이 ‘얄개 짓’이라 생각하며 벌이는 행태를 실화에 근거하여 글로 꾸며 보았다.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서울4대문 안 길 이름), 2010,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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