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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도 의병 서울진공작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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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13도 의병 서울진공작전지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서울 중랑구 망우동 망우로76길 50-13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12.7km
13도 의병 서울진공작전지(13도 의병의 연합 구심지) ...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 해산 군인들의 의병 합류로 의병투쟁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그런 가운데 이은찬과 이구재가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해산 군인을 포함해 5백여 명의 의병을 모집한 뒤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원주로 출진해 관동창의대장에 오른 이인영은 각 도에 격문을 보내 일본의 불의를 성토하고 경기도 양주로 모일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장들이 부대를 이끌고 속속 양주로 모여들었는데, 경기도의 허위, 황해도의 권중희, 충청도의 이강년, 강원도의 민긍호, 경상도의 신돌석, 전라도의 문태수, 평안도의 방인관, 함경도의 정봉준 등이었다.
1907년 12월 양주에 집결한 의병은 1만여 명으로, 그 가운데 훈련받은 군인이 약 3천 명이었다. 전국의 의병장들은 양주에서 13도 의병 연합부대를 편성하고, 총대장에 이인영, 군사장에 허위를 선출하였다. 병력을 24진으로 나누어 서울을 향해 진군을 개시하였다. 이 때 군사장 허위는 결사대 300명을 이끌고 선두에서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진출하였으나, 후속부대와 연락이 끊어진 상태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부친상 소식을 접한 총대장 이인영이 지휘권을 허위에게 넘기고 낙향함으로써 의병 연합부대는 구심점을 잃고 결국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