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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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산 의병장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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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전해산 의병장 집터
  • Jeonhaesan Righteous Army General Birthplace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전북 장수군 번암면 성암길 69-9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233.6km
해산 전수용(全垂鏞, 1879 ~ 1910)은 전북 임실 출신으로 부친 전병국과 모친 경주 김씨 사이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공부하기 좋아하여 경서와 역사를 널리 보고 글짓기를 잘하였다. 1903년 한창 열혈의 기질이 발하던 청년시절에 절의로 이름 높던 선비들인 송병선, 기우만과 면암 최익현 등이 인근 지역인 익산군의 낙영당에서 모여 강연회를 베풀 때 고향 사람인 이석용과 함께 참가하여 선비들의 우국충정에 어린 강연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전해산은 이러한 견문과 학식을 바탕으로 박학한 지식과 실천 유학자로서 성숙하였다.
1906년 6월 최익현과 임병찬이 전북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강회를 열고 의병을 일으키자 그 역시 가담하기 위해 찾아갔다. 이곳에서 전해산은 노구의 몸으로 의병을 일으킨 최익현을 보며 감명을 받았지만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무장투쟁에 미흡한 유생 의병들이어서 이내 귀향하고 말았다.
1907년 9월 기삼연, 김용구 등이 전남 장성의 수연산에서 호남창의회맹소를 조직하자 전해산은 이 회맹소의 종사라는 직책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이 회맹소는 1908년 2월 공음전투에서 김용구 의병부대가 패전한 이후 사실상 활동이 중지되고 말았다. 이즈음 일찍부터 친분이 두터웠던 이석용이 임실을 중심으로 무기와 병력을 모아 진안 마이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창의동맹단을 조직하자 전해산은 참모로 이에 가담함으로써 본격적인 의병항쟁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현재 전북 장수에는 전해산이 살던 본래 집은 없어지고 현대식으로 지은 양옥이 들어서 있다. 전해산의 집터 부근에는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한 전해산 기념관과 동상, 그리고 추모비가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