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4-28
  • 언어선택
제주 알뜨르 비행장
+
  • +82 64-710-6258
1234
    현지어
  • 제주 알뜨르 비행장
  • Jeju Alddreu Airfield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411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488.0km
" … 18살 때인 1942년에 동리 주민 30여 명과 함께 알뜨르로 동원된 후, 알오름 굴 파는 작업에 3년 동안 투입됐다. … 작업에 동원된 사람들은 대부분 제주도 주민들이었고 … 너비는 한 칸(8자), 높이는 3~4m 정도인데, 굴착에는 곡괭이를 주로 이용했고, 천정은 나무사다리위에 올라가 작업 … “

위의 증언은 알뜨르 비행장 건설 후 해군비행장 지하진지 건설에 동원되었던 오형승씨의 증언이다.
알뜨르 비행장은 처음 중·일전쟁에 대비하여 중국 공격 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 하에 1926년에 구상되었다. 그 후 1차 공사(1931-1935년)로 1,400m×70m의 활주로가 규모 약 18만평으로 완성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군사적인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고, 결국 중국 난징 및 상하이를 공격하기 위해 나가사키 현의 오무라 항공기지를 알뜨르 비행장으로 옮기게 되었다. 오무라 해군항공대 등의 주둔으로 알뜨르 비행장의 규모는 2차 공사(1937-1938년)를 통해 40만 평으로 확장되었다. 제주도에서 출발한 비행기의 난징 공습은 36회, 연 600기, 투하폭탄 총 300톤에 달하였다. 그러나 1938년 11월에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하면서 오무라 항공대가 상하이 인근으로 옮겨졌고, 제주도 항공기지인 알뜨르 비행장은 일시적으로 오무라 해군항공대 연습비행장으로 활용하였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상륙 가능성이 가장 많았던 이곳은 해안 전지거점 지역으로 진지화되었다.
1944년 10월 3차 공사로 비행장 규모는 66만 7천 평으로 확대되었다. 이 시기 모슬봉에 레이더기지를 설치하는 한편, 미군 공격으로부터 사람과 물자를 보호하기 위한 항공기지 지하 격납을 시작하였다. 전투사령실, 격납고, 프로펠러 조정장, 발동기 정비장, 계기 시험장, 연료고, 통신실, 섯알오름 탄약고 등의 지하시설을 마련하였다. 나아가 미군의 상륙에 대비한 사령부 등 군사 주요시설의 지하수용을 목적으로 하는 갱도 진지를 구축했던 것이다.

제주도가 전략상 각광을 받은 것은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당시 일본 해군은 중국 난징에 해양폭격을 개시하였다. 이 때 나가사키현의 오무라 항공기지에서 출격하여 제주도 항공기지로 돌아왔다. 이 후 난징, 상하이 등지의 해양폭격의 거점은 제주도로 옮겨지고, 제주도 항공기지에는 오무라 해군항공부대가 주둔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제주도 항공기지는 오무라비행장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동시에 제주도 항공기지를 40만평으로 확대하는 제2차 확충공사도 시작되었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오무라해군항공대가 중국으로 본부를 옮기면서 제주도 항공기지는 오무라해군항공대의 연습비행장으로 활용되었다.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 초기에는 일본군이 우세하였으나,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 이후 전세는 일본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1944년 5월경 일본 상공에 미군의 B-29기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는 일본 본토가 공습권역에 들어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제주도가 군사작전상 중요한 기지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미군에 의해 필리핀에 이어 1945년 2월 이오섬이 점령되면서 오키나와와 규슈 지방 등 일본 본토에 대한 상륙가능성이 높아졌다.
1945년 2월 9일 일본은 미군 공격으로부터 일본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작전, 즉 암호명 “결호작전”을 준비하였다. 1호부터 7호까지 있는 결호작전은 대부분 일본 영토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지정학적으로 미군이 상륙할 가능성이 높았던 제주도가 한반도에서는 유일하게 “결7호작전”의 대상이 되었다.
“결7호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1945년 4월 15일 0시를 기해 관련 부대들이 제주도로 속속 진입하고, “결7호작전”구상에 따른 부대배치와 진지구축 작업 등이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제주도에 주둔했던 일본군은 7만 5,000여 명에 달하게 되었다. 이들은 제주도 전역에 배치되어 요새구축 등 미군과의 일전을 준비했다. 가마오름 일본군 동굴진지, 송악산 해안 일본군 동굴진지 등 제주도의 오름과 해안 100여개 소에 각종 진지를 포함한 요새들이 집단적으로 구축되었다. 또 대정읍 모슬포 알뜨르에 해군비행장을 확장하고 제주시 정뜨르에 육군서비행장을 새로 건설하였다.
주변뉴스
< 1/2 >
주변포토
< 1/2 >
동종 정보 [내위치에서 488.0km]
실시간 관심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