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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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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이시영 집터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서울 중구 을지로2가 을지로2가 164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1.6km
이시영(李始榮, 1869~1953)은 서울 출신으로, 1885년 관직에 나아가 형조좌랑·홍문관교리·승정원동부승지·궁내부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895년 관직에서 물러난 뒤로는 중형 이회영과 신학문 탐구에 몰두하였다. 1905년 외부 교섭국장에 임명되었으나 을사늑약을 계기로 사직하였다. 1906년 평안남도관찰사, 1907년 중추원의관, 1908년 한성재판소장 등을 역임하면서 안창호·전덕기·이동녕·이회영 등과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국권을 빼앗긴 후 신민회의 국외 독립운동기지 건설 계획에 따라 6형제의 가산을 정리하여, 1910년 말 서간도 유하현 삼원보 추가가로 가족을 거느리고 망명하였다. 1911년 4월 유하현 삼원보 대고산(大孤山)에서 군중대회를 개최하여 경학사(耕學社)와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의 설립을 주도했으며, 1912년 통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에 토지를 매입해 신흥강습소를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로 확대 발전시켰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북경에서 상해로 가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법무총장과 재무총장, 국무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해방 후 환국하여 1948년 7월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