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북경에서 박용만이 결혼하여 신혼살림을 꾸렸던 곳 ... 1919년 북경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박용만은 독립전쟁노선에 따라 군사통일회, 제2보합단 등의 조직에 참가하며 독립운동사에 괄목할만한 자취를 남겼다. 그는 장기적 독립운동 구상 아래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다.
박용만은 1921년 9월 21일 북경정부 재정부 관리인 중국인 장모의 딸과 결혼하였는데, 병마사호동은 그가 중국 여인과 신혼살림을 차렸던 곳이다. 그의 신혼살림집은 현재 병마사호동 59호로 추정된다.
당시 건물은 없어지고 4층짜리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