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 김윤식 선생은 1903년 1월 16일(음력 1902. 12. 18) 이곳에서 김종호의 2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에는 채준으로 불렀으나 윤식으로 개명하였다. 영랑은 그의 아호인데 문단 활동시에 주로 이 아호를 사용했다. 영랑 선생은 1950년 9월 29일 작고하기까지 주옥같은 시 "모란이 피기 까지는" 등 80여 편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 60여편이 광복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이 곳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다.
영랑 생가는 1948년 영랑이 서울로 이거한 후 몇차례 전매되었으나 영랑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있으며 모란이 많이 심어져있다.
* 규모 - 생가 일원 (4,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