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클럽의 VVIP 메뉴. 1000만원짜리 만수르 세트가 있다./B클럽









밤문화산업의 현장 '강남 클럽' 르포












[조선일보] 20일 서울 강남의 A클럽 앞. 한 종업원이 종이를 들고 바를 정(正)자를 열심히 적고 있다. 줄을 서 대기하다 들어 오는 고객 가운데 외국인이 있으면 숫자를 세 표시하는 것이다. 국가·사용언어 별로 중국인, 미국·영국인, 일본인을 따로 표기했다. 이 종업원은 “외국인 고객에겐 해당 언어를 구사하는 전담 종업원을 붙인다”고 했다.







슬쩍 종이를 들여다봤다. 지금 클럽 안에는 중국인이 40여명, 미국·유럽인이 30명, 일본인이 20명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종업원은 “전체 고객의 20%가 외국인”이라고 했다. 요즘 클럽들은 외국인 고객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그 중에서도 중국 고객이 핵심이다. 이른바 ‘만수르 세트’ 같은 초고가 메뉴를 서슴지 않고 주문하는 사람의 절반은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최고가 세트 메뉴 1000만원, 하룻밤에 4000만원 쓴 중국인도







B클럽이 판매하는 만수르 세트 가격은 1000만원. 세트엔 ‘왕의 코냑’ 혹은 ‘코냑의 왕’이라 불리는 루이 13세(클럽판매가 약 500만원), 최고급 샴페인 돔페리뇽(70만원) 같은 최고급 주류가 들어간다. 아랍에미리트의 왕족이자 거부(巨富)인 셰이크 만수르 정도 돈이 있어야 먹을 수 있다는 의미로 ‘만수르 세트’란 이름을 붙였다.







이민후 옥타곤 부사장은 “작년 중국인 5명이 하룻밤 술 값으로 4000만원을 쓴 적이 있다”고 말했다. 국산 고급차 한대 값을 하룻밤 술값으로 쓴 것이다. 한 클럽 관계자는 “미국인과 일본인은 바에서 술을 한 잔씩 사서 마시는 경우가 많다”며 “만수르 세트처럼 최고가 술을 마시는 사람 대부분은 중국인”이라고 말했다. 중국 고객은 씀씀이가 다르다는 것이다.







과거 이태원 술집을 주로 찾았던 외국인들이 요즘 강남 클럽과 사랑에 빠졌다. 외국인들이 본격적으로 강남 클럽을 드나들기 시작한 시기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다음부터다. 올 들어서는 한국관광공사가 발행한 한류관광책자 ‘서울엔터테인먼트’에 강남 클럽이 소개되면서 강남 클럽을 드나드는 외국인이 더 늘어났다고 한다.







씀씀이가 큰 고객이 몰리면서 강남 클럽은 짭짤한 수입을 챙기고 있다. 강남 고급 클럽의 객단가는 일반 고객 기준 5~6만원이다. 한 사람이 10만원 정도를 쓰면 VIP 대접을 받는다. 대형 클럽의 하루 고객 수는 2000여명. VIP 비중이 20%라고 치면 하루 매출만 1억2000만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 클럽에서 제공하는 호텔급 음식










◇ 강남 클럽의 성공 비결…전문가들의 치밀한 기획







강남 클럽이 인기를 끄는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과거 유흥업소와 달리 강남 클럽은 업계 엘리트들이 치밀하게 기획해 만든 상품이라는 점이다. 2007년 강남 최초의 대형클럽 ‘서클’을 기획한 인물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선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라스베이거스 주립대(UNLV·University of Nevada, Las Vegas) 호텔학과 출신이다.







현재 강남 최대 클럽인 옥타곤의 창립멤버들도 상당수가 국내 대기업에 다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옥타콘 창립멤버로 총괄부사장을 지낸 김형섭 이꼬르 대표는 CJ그룹 전략기획실 출신이다. CJ그룹이 클럽, 호텔 등 신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만든 테스크포스(TF)팀의 멤버였던 김씨는 CJ가 관련 사업을 포기하자 사표를 던지고 클럽 사업에 뛰어 들었다. 역시 창립멤버 가운데 하나인 옥타곤 이민후 부사장은 해외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내고 국내로 들어와 현대그룹에서 일을 한 경력이 있다.







이 부사장은 “해외 거주 경험을 클럽 운영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김 전 부사장은 옥타곤을 만들 때 해외 유명 클럽들을 벤치마킹했다고 말했다. “일반 레스토랑에선 직원 1명이 테이블 4개(16명 기준)를 담당합니다. 그러나 클럽은 3개 이하였습니다. 술을 마시면 인내심이 사라집니다. 식당에선 주문한 것이 나올 때까지 20분 기다리는 사람들이 클럽에선 10분도 못 기다립니다.”







또 고급 호텔 수준의 술과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업계 최고 수준의 요리사도 채용했다. 프랑스 명문 요리학교인 르 꼬르동 블루를 졸업하고 CGV가 운영하는 복합 문화 공간 ‘씨네 드 셰프’에서 5년간 총괄 셰프로 일한 유성남 셰프에게 요리를 맡긴 것이다. 유 셰프는 현재는 옥타곤에서 나가 브루터스란 레스토랑을 이끌고 있지만 아직 옥타곤의 메뉴개발 컨설팅을 맡고 있다.







지금은 메리어트 호텔에서 근무하는 김현철 바텐더는 옥타곤에서 근무할 때 디아지오 월드클래스 바텐더 챔피언십에서 2년 연속 탑 10에 오르기도 했다. 업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를 고용해 최고의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진짜 음악을 즐기는’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 콘텐츠에도 신경썼다. 페데 르 그랑 등 세계 정상급 디제이(DJ)를 매주 초대했다. 네덜란드 출신 스타 DJ인 그는 전용기를 타고 전세계를 돌며 한해 180 차례 이상의 공연을 소화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 외에도 클럽이 직접 고용한 DJ만 12명이다.







클럽의 또 다른 흥행 요소는 ‘프로모터(promoter)’다. 프로모터란 클럽에 손님을 끌어오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프로모터가 미모의 여성 고객, VIP고객을 얼마나 많이 데려오는냐에 클럽의 성패가 달려 있다. 클럽마다 보통 수십명의 프로모터를 고용한다.







프로모터들은 자신이 초대한 손님들과 함께 놀고, 그들이 클럽에서 쓴 비용의 일부(약 10~15% 정도)를 커미션으로 받는다. 잘 나가는 프로모터들은 억대 연봉을 자랑한다. 전직 프로모터인 A씨는 “내 휴대폰에는 유명 연예인, 재벌 3세, 잘 노는 젊은 남녀의 전화번호가 수천 개 있다. 내가 가진 최고의 자산이 바로 이 연락처”라고 말했다.







최근 클럽들이 점차 콘텐츠와 서비스보다는 프로모터를 통한 영업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콘텐츠나 서비스에 투자하면 비용이 많이 들고 효과를 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면 프로모터 중심 영업은 단기간에 큰 실적을 낼 수 있다. 클럽 입장에선 일종의 마약인 셈이다. 반면 프로모터를 통한 영업은 약빨이 빨리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 클럽에만 있는 콘텐츠가 없기 때문에 고객들이 계속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 B클럽 내부 모습과 '허니버터칩'을 따라한 클럽 메뉴




◇ 클럽도 문화 산업…복합문화공간 만들어야







클럽도 하나의 문화 산업이다. 미국 식품업계 조사기관인 테크노믹(Technomic)은 2013년 기준 미국 탑 100에 속하는 나이트클럽·바가 총 15억 달러(1조6900억원)의 수익을 냈다고 발표했다. 탑 100에 드는 나이트클럽·바 중 1~3위는 모두 라스베이거스에 있다. 1위인 마르퀴(Marquee) 클럽은 연간 순익이 8000만달러(901억원)에 달한다. 미국 최고의 경영대학원인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애니타 엘버스 교수는 지난 2009년 마르퀴 클럽의 성공사례를 분석한 케이스스터디 자료(Marquee: The Business of Nightlife)를 발표하기도 했다.







외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일반적으로 그 나라의 음식, 쇼핑뿐 아니라 밤 문화도 즐기고 싶어한다. 예를 들어 홍콩 관광객들은 낮에는 홍콩 음식을 먹고, 쇼핑을 하다가 밤에는 란콰이펑의 클럽에 간다. 한국 관광객도 이런 밤 문화 상품을 기대한다. 그러나 아직 외국인에게 추천할만한 한국의 밤 문화 상품은 없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대부분은 쇼핑만 즐기고 간다. 비싼 명품백을 사간다 해도 원가를 생각하면 마진은 그리 크지 않다. 김형섭 전 옥타곤·클럽엘루이 부사장(현 이꼬르 대표)은 “밤 문화 산업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적 소비가 있는 시장이기 때문에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서 “라스베이거스 유명 클럽의 테이블 예약 비용은 1500만원에 달한다. 한국에도 그런 클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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