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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행-샌프란시스코[USA Travel-San Francisco] 횡단 열차 여행 5/Fisherman Wharf/Golden Gate Park/Haight-Ashbury
이제 기차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어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로 향한다. 캘리포니아의 드넓은 평원을 지나자 태평양 바다가 보이고, 뉴욕을 출발한지 9일 만에 이번 대륙횡단 여행의 종착지인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바다를 구경하고 싶었던 나는 먼저 샌프란시스코만에 있는 피셔맨즈 와프를 찾았다. 이곳은 19세기 골드러시 때 이주를 한 이탈리아 어부들이 고기를 잡던 항구였다. 피셔맨즈 와프는 지금도 샌프란시스코의 중요한 어업기지이긴 하지만 그보다도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오후가 되자 연어잡이 배들이 하나둘씩 돌아온다. 관광객들이 잡은 연어는 즉석에서 손질해 주기도한다. 고급 어종에 속하는 은연어인데, 가까이서 보니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직접 잡았어요?” “네. 하나를 잡았는데, 어떤 게 제건 지는 모르겠어요. 큰 건 엄마가 잡았어요.” 항구 한 쪽에서는 사람들이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다. 동물 울음소리가 무척이나 요란한데, 이곳의 명물인 바다사자들이다. 어미들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들이 일광욕을 즐긴다. 아까 거대한 연어를 보니, 녀석들이 왜 이곳에 모여 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피셔맨즈 와프가 외국인들의 관광명소라면, 골든게이트 파크는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휴식 공간이다. 골든게이트 파크는 만들어진지 150년 가까이 된 유서 깊은 공원으로 여의도와 넓이가 비슷하다. 그런데 공원 벤치마다 사람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공원을 보존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부를 한다고 한다. 골든게이트 파크는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곳이다. 1960년대 말, 골든게이트 파크는 베트남전 반전시위의 중심지였다. 지금도 샌프란시스코가 평화의 도시로 불리는 이유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가난한 예술가들은 집값이 싼 하이트-애슈버리 거리에 모여 살았다. 그중에는 지미 헨드릭스 같은 젊은이들의 우상도 있었다. 이곳에 모인 젊은이들을 사람들은 히피라 불렀는데, 1967년 여름, 히피들은 역사적인 제전을 벌이게 된다.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히피들은 서로 머리에 꽃을 꽂아 주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유와 평화, 사랑을 노래했다. 히피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지만 하이트 애슈버리 거리는 여전히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넘친다. 이곳 사람들은 히피들이 추구했던 이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한다. “50년 전 세대였던 히피 예술가나 운동가들처럼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찾아나가고,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일요일 오전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찾았다. 마침 중국의 추석인 중추절 축제가 열리고 있어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였다. 사자춤을 구경하고 있자니 여기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된다. 차이나타운 안에 있는 한 작은 공원에는 2년 전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중국과 필리핀, 한국 위안부 소녀가 서로 손을 꼭 잡고 원을 그리며 서 있다. 그리고 1991년 위안부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렸던 김학순 할머니가 손을 모은 채 소녀들을 바라보고 있다. 일본이 집요하게 방해했지만 미국 작가와 아시아 교민사회, 샌프란시스코 시는 이에 굴하지 않고 기림비를 끝내 세웠다고 한다. 자유와 평화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에 이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진 것은 일종의 필연처럼 느껴졌다. 바람 많은 샌프란시스코가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은 비단 이 멋진 풍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을 다시 한 번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얼마나 많은 피와 땀, 눈물이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며 미대륙 횡단열차 여행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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