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이 초래한 인사비극
18대 대통령직 인수위가 중반으로 접어든 2013년 1월24일.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은 아침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 발표가 예고됐기 때문이다. 발표가 예정된 시각, 박 당선인이 회견장에 들어와 마이크를 잡았다. 뒤에는 김용준 당시 인수위원장이 서 있었다. 박 당선인의 입에서 “초대 총리 후보자에 김용준 인수위원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회견장에서는 탄식이 터졌다. 김 전 위원장이 위원장 자격으로 배석한 줄만 알았던 기자들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깜짝인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두 아들의 병역 문제와 부동산 투기 의혹 등에 대한 언론의 혹독한 사전 검증을 견디지 못하고 불과 닷새 만에 손을 들었다. 초대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를 앞두고 스스로 사퇴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면서 ‘깜짝인사’는 ‘불통인사’ 논란으로 번졌다. 당시 인수위 내부에선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기대와 달리 깜짝인사는 중단 없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김종훈(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김병관(국방부 장관 후보자), 한만수(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황철주(중소기업청장 내정자), 김학의(법무차관 내정자) 등 5명이 부실 검증 논란을 빚으며 3월 한 달 동안 줄줄이 낙마했다.
이 가운데 황 내정자는 공직을 맡기 전 보유 주식을 신탁 후 처분해야 한다는 ‘백지신탁’ 조항에 걸려 낙마했다. 청와대 인사검증팀이 이 조항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내정 사실을 통보했고, 황 내정자는 중기청장직을 수락했다가 보유 주식을 모두 팔아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하차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인사 업무를 맡았던 A씨. “인사 검증팀이 백지신탁 조항을 몰랐다는 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인수위 시절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공조를 하지 않다 보니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한 것이다.”
인수위 시절 이명박 정부 청와대 정무 및 민정 라인이 인사 검증 관련 파일을 전달했지만, 박 당선인이 ‘그쪽 사람들을 굳이 쓸 이유가 없다’며 거절하는 통에 활용하지 못했다. 당시 주요 공직 후보자를 검증할 때도 청와대와 정부의 검증 기능을 활용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인선 내용이 외부로 알려질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박 전 대통령의 불통인사 논란은 몇 개월 뒤 첫 미국 방문 기간 중 윤창중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정점으로 치달았고 집권 첫해 내내 박근혜 정부를 괴롭힌 악몽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