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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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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732-7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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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중명전
  • jungmyeongjeon
    분류
  • 여행/오락 > 여행지
    주소
  • 서울 중구 정동 길 41-11 (정동)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1.2km
중명전은 덕수궁(경운궁)에 지은 황실 도서관으로, 원래 이름은 수옥헌이다. 덕수궁이 불타자 1904년 고종이 이 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중명전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궁궐 안에 지은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처음에는 당연히 덕수궁(경운궁) 궁궐 안에 있었지만, 덕수궁 궐역이 1/3로 줄어들어, 지금은 덕수궁 밖에 있게 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을사조약)이 강제된 곳으로, 2010년 새롭게 복원하여 을사늑약과 관련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입장료] 없음
[여는 시간] 10:00, 11:00, 13:00, 14:00, 15:00, 16:00
[닫는 날] 월요일

중명전은 원래 정동지역 서양 선교사들의 거주지에 속해 있다가, 1897년 경운궁(현 덕수궁)이 확장되면서 궁궐로 편입되었다. 이때 당호를 ‘수옥헌’이라 짓고, 주로 황실 도서관(King's Library)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1901년 화재로 전소된 후 재건되어 지금과 같은 2층 벽돌 건물의 외형을 갖추게 되었다. 건물의 설계는 독립문, 정관헌 등을 설계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A.I. Sabatin)이 하였다.

중명전은 대한제국의 중요한 현장이다. 특히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 대화재 이후 중명전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황제의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불법적으로 체결되었으며 그 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1907년 4월 20일 헤이그 특사로 이준 등을 파견한 곳도 바로 중명전이다. 일제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켰다.

한편 중명전은 1925년 화재로 외벽만 남기고 소실된 뒤 다시 재건하여 외국인을 위한 사교클럽으로 주로 쓰이다가 자유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유재산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은 영구 귀국한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에게 중명전을 돌려주었다. 1977년 중명전은 다시 민간에 매각되었다. 그 후 2003년 정동극장에서 매입한 뒤 2006년 문화재청에 관리 전환하여, 2007년 2월 7일 사적 제 124호로 덕수궁에 편입되었다. 2009년 12월 복원을 거쳐 2010년 8월부터 전시관(‘대한제국의 운명이 갈린 곳, 덕수궁 중명전’)으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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