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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석 집터(13도의군 도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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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유인석 집터(13도의군 도총재)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강원 춘천시 남면 여우내길 13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56.8km
유인석의 호는 의암(毅菴)이다. 그는 강원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에서 유중곤의 아들로 태어나 유중선에게 입양되었다. 1896년 2월 7일 이춘영, 안승우, 이필희 등과 함께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의병대장에 추대되었다. 한 때 3,000여 명에 이르렀던 유인석의 제천 의병은 제천·충주·단양·원주 등지를 점령하고 친일 관찰사와 군수 등을 처단하였다. 그러나 장기렴이 이끄는 관군에게 패하면서 최후의 거점이었던 제천성을 빼앗겼다.
유인석은 재기를 도모하려고 서북행을 결행하여 강원·황해·평안도를 거쳐 서간도로 건너갔다. 그러나 회인현에서 서본우에게 무장해제를 당하면서 의병을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유인석은 의병해산을 당한 뒤 1897년 3월 고종의 명으로 일시 귀국하였다.
1905년 일제의 강압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외교권을 박탈당하자, 유인석은 여러 지역에 방문을 보내 의병 봉기를 독려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활동은 일제의 탄압으로 어려움에 봉착하였고 1908년 8월 조국 독립의 꿈을 안고 러시아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였다. 유인석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상설, 이범윤 등과 1910년 6월 연해주 의병 통합체인 13도 의군을 결성하고 도총재에 추대되었다. 1910년 8월 29일에는 일제가 한국을 강제 병탄하면서 러시아의 탄압으로 13도의군이 해산되자 1914년 3월 중국 봉천성 서풍현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평생을 외세의 침략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유인석은 1915년 1월 29일(음력) 관전현 방취구에서 병사하였다. 그의 나이 74세 때였다. 1962년 정부는 유인석의 독립운동과 공로를 인정하여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