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바오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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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인민대표대회 개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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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 495 621-43-14
1234
    현지어
  • Россий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Гуманитар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Историко-архивный Институт
  • Russian State University for the Humanities, Historical and Archival Institute
    분류
  • 여행/오락 > 역사유적
    주소
  • 유럽 러시아 러시아 Москва, улица Никольская 15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6,605.7km
모스크바 니콜리스카야 거리 15번지 강당 6호실(러시아 국립 인문학 대학, 역사 및 기록 연구소)

역사적 의의
1922년 1월 21일부터 2월 1일까지 모스크바와 페트로그라드(마지막 폐막일)에서 개최된 극동인민대표회의 개최 장소

설명
1922년 1월 21일부터 2월 1일까지 모스크바와 페트로그라드(마지막 폐막일)에서 개최된 원동 민족혁명단체대표회가 개최된 장소이다. 이 대회는 미국에서 개최된 워싱턴회의에 대응하기 위해 소련이 주도한 것이었다. 애초 대회는 워싱턴회의(태평양회의)의 개최 예정일인 1921년 11월 11일에 맞춰 이르쿠츠크에서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정세의 변화와 준비의 부족으로 수차례 연기되었다. 대회의 중심인물로 초청된 가타야마 센(片山潛)의 도착이 늦어져 1922년 1월로 연기되고, 장소도 모스크바로 바뀌었다. 조선·중국·일본·몽골·칼미크·자바 등으로부터 대표단이 파견되었고, 그중 조선은 56명으로 최대 인원이 참가하였다. 또한, 이들 의결권을 가진 119명 외에도 심의권을 가진 17명이 참가하였다.
대회 참가자였던 김단야의 의견을 따르면 대회는 크렘린 궁전 안에서 개회되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이후 10일이 넘는 회의 여러 회의와 분과회의 등을 고려한다면 크렘린 궁이 아닌, 러시아 국립인문대학교 건물 1층 6호실 강당에서 개최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여운형의 심문조서(제2회)」에 의하면, 개회식은 크렘린 궁에서 열렸고, 그리스정교신학교 제3기숙사에서 회의가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그리스정교신학교의 상황으로 보아 조선대표단의 숙소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지 러시아 정교 신부들의 증언으로는, 당시에는 수도원 본당 건너편의 3층 건물이 기숙사였다고 하며, 이곳에서 조선대표단들이 숙박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대회의 회의장은 현재 러시아 국립인문대학교(Rossiikii Gosudarstvennyi Gumanitarnyi Universitet) 역사문헌보관학 대학(Istorikogo~Arkhivnyi Institut)의 역사정치법학부(Fakultet Istorii Politologii Prava, 7/9 4동 건물)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회의가 열린 1층 강당은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조선대표단의 숙소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리스정교신학교는 건물 사이의 돔형 입구로 들어가면 마당이 있고, 왼쪽에는 자이코노스파스 수도원 스파스(구세주) 본당(Spaskii Sobor Jaikonospasskogo Monastyrya, 7/9 2동 건물) 건물, 마당 건너편에는 고문서학과가 들어있는 3층의 고색창연한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건물과 연이어 3층의 낡은 건물이 있는데 이곳에 조선대표단이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은 1928년까지 교회로 사용되었으나, 현재 개·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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