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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푸더 축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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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延边富德足球俱乐部
  • Yánbiān fù dé zúqiú jùlèbù
    분류
  • 스포츠/레저 > 축구장/축구용품
    주소
  • 지린 옌볜 조선족자치주 옌지시 长白山西路9399号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635.4km
축구는 연변지역에서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10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서 중국조선족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연변축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축구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중요한 존재이다. 1955년 길림성 축구팀이 창단되어서 부터 연변축구실력의 절대적인 우세로하여 연변축구팀은 길림성축구팀을 대변하여 중국축구무대를 주름 잡아왔다. 창단초창기 길림성을 대표하는 연변축구팀은 2:1의 전적으로 유럽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중국국가 대표팀을 제압함으로써 용맹무쌍한 길림팀에게 당시의 국가체육총국의 하룡원수(賀龍元帥)는 아낌없는 절찬을 보내주었다. 그는 “길림팀은 국가팀의 정교한 기술을 따라배워야 하고 국가팀은 길림팀의 불굴의 정신과 완강한 풍격을 본받아야 한다”라고 지시를 내리었다. 지난 50년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연변축구팀에서는 고종훈, 김광주, 이홍군 등 40여명의 국가팀 선수를 양성하였고 중국국내 타성시 축구팀에 400여명의 선수를 배출해냄으로 하여 중국축구인재 양성의 요람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1965년 길림성 축구팀은 전국축구 갑급리그전 우승을 따냈고 1993년 이호은감독이 인솔한 연변팀은 전국체전에서 “백두호랑이” 돌풍을 이르킴으로 연변특유의 축구기법으로 중국축구계의 주목을 불러일으켰다. 1997년 연변축구팀은 한양대 최은택교수를 초빙하여 대한민국의 선진적 축구지식과 팀관리 방법, 기법 등을 인입하여 연변축구의 일대 변혁을 이르켜 시즌4위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중국프로 축구에서 한국감독 인입열풍이 일어난것도 연변축구팀과 최은택의 성공사례가 지극히 중요한 관련이 있다. 1999년 소장파감독인 고훈이 최은택교수의 축구지도 풍격을 이어받아 “전면진공 전면방어”기법으로 프로리그의 선두주자들을 하나 하나 무너뜨림으로 하여 연변팀은 다시 한번 중국축구계의 이목을 불러 이르켜 “푸른잔디의 협객”이라는 별칭을 가지게 되었다.
연변축구구단은 2000년 중국축구 1부프로리그에서 밀려나는 수모를 당하여 팀은 중국절강성 록성그룹에 매각되어 연변축구는 사상 최저기를 직면하게 되었다. 그후 꾸준한 노력으로 2004년 연변축구팀은 중국축구프로리그 갑급팀 리그전에 복귀하였으며 2008년에는 중국프로축구 갑급리그전8위의 성적을 이루었다.
연변축구팀은 예로부터 풍격이 완강하고 기법이 억세고 팀웍이 강하며 “전면진공 전면방어”전술을 잘 운영함으로 하여 중국국내 축구계의 전통이 있는 최강팀으로 인정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변축구팀의 소지하고 있는 팀 이미지는 언제나 매체의 찬양과 동정을 불러오고 있는 반면 부정적인 평과와 질타는 전혀 찾아볼길 없었다. 연변축구가 가지고 있는 드넓은 시장은 중국축구계에서도 인기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라고 할수 있다.
연변 민중들은 유달리 축구를 사랑함으로 하여 수많은 축구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연변축구경기장 평균입장 인수는 3만명이상으로 프로리그 홈경기장을 찾는 팬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어 연변 지역의 특이한 문화현상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연변 민중들의 축구에 대한 지성어린 관심과 성원의 힘을 입어 연변축구는 오늘까지 지탱하여 올수 있었고 또한 연변축구의 미래도 밝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중국 열성축구팬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지닌 연변축구팀은 민족의 투혼으로 축구문화의 최전선을 굳게 지키며 뼈속에 깊이 침투되어 있는 불굴의 의지와 완강한 정신으로 중국축구문화를 장식하여 나아 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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