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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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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 정릉
  • Jeongneung (A Royal Tomb)
    분류
  • 여행/오락 > 여행지
    주소
  • 서울 성북구 정릉2동 산 87-16
  • 거리 [서울](로/으로)부터 5.9km
험난한 역사 속을 거닐다북한산 등산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정릉이란 이름이익숙하다. 등산 코스 중 한 곳인데, 산행을 위한 코스일뿐 정작 정릉을 찾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넓은대지에 능과 비석, 정자석이 대부분인 능들은 사람들의눈길을 끌 요소가 많지 않다. 정릉 역시 마찬가지다.조그마한 능에 뭐 볼 것이 있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그곳에는 역사가 잠들어 있다는 조금 식상한답변밖에는.역사를 모르고 가도 좋지만, 알고 찾아가면 더욱 좋다.특히 정릉과 같이 역사의 변동에 따라 수많은 고초를겪은 장소는 더욱 그렇다. 정릉은 태조의 계비신덕왕후의 능으로, 극진히 사랑했던 신덕왕후가갑자기 승하하자 태조는 도성 안 덕수궁 뒤편에 능역을조성했다. 강씨의 봉분 우측에 훗날 자신이 묻힐자리까지 함께 마련하여 능호를 정릉으로 정하였던것이다.그러나 정릉에 시련이 닥친 것은 신덕왕후가 낳은왕자인 방번과 방석이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살해되고태조의 원비 신의왕후의 다섯 번째 소생 태종이 즉위한이후부터다. 태종은 정릉의 능역 100보 근처까지주택지로 정하여 정릉 숲의 나무를 베어 저택을 짓는것을 허락했다. 청계천 광통교가 홍수에 무너지자이번에는 능의 석물 중 병풍석을 광통교 복구에사용하였다. 목재나 석재들은 태평관을 짓는 데사용되었고, 신덕왕후 강씨의 능은 지금의 성북구로이장했다. 지금도 정릉을 찾으면 그 빛바랜 흔적들을확인할 수 있다.걸음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풍경실제로 정릉은 다른 왕릉과 비교했을 때 석물이빈약하다. 병풍석이나 난간석은 봉분에서 사라지고 4각장명등, 고석, 상석 등만이 원래의 것으로 추정된다.장명등의 경우 생김새가 독특한데, 고려 시대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 시대 능역의 가장오래된 석물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가 높다.일반 왕릉의 영역이 직선축을 이루는 데 반해, 정릉의공간은 자연 지형에 맞추어 절선축(折線軸) 기법으로조성됐다. ‘절선축 기법’이란 진입로와 중심 영역의축이 일직선이 아니라 축을 꺾어서 연결시켜 시각적흐름을 단절시키는 기법이다. 걷는 방향에 따라눈앞에는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이리저리 꺾으면서거니는 재미가 쏠쏠하다.또한 능역 입구 금천교의 모습은 우리나라 석교의조형기술을 볼 수 있다. 정릉은 정릉동에 자리한아리랑시장 안 좁은 길을 지나 주택가 사이에서 입구를찾을 수 있다. 주차 공간이 부족해 대중교통을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정릉은 다른 능과 비교했을 때 석물이 간소한 편이다.* 정릉의 구성을 가리키는 안내판 모습* 아이들이 할머니 품에서 뛰어놀듯 정릉의 정자각 아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홍살문 쪽에서 바라본 정자각과 비각 등의 전경* 정릉에서 내려다본 정자각과 비각 모습* 정릉 앞 장명등은 조선 시대 능역의 가장 오래된 석물이며 동시에 예술적 가치도 높다.* 장명등은 고려 시대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석물이다.*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을 나타내는 정릉 비석* 정릉의 잘 가꿔진 자연은 더없이 좋은 산책로가 된다.* 정릉의 공간은 일반 왕릉의 영역과 달리 자연 지형을 살려 홍살문과 정자각이 ㄱ자 형태의 절선축으로 조성됐다.공간개요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이다. 원래 중구 정동에 있었으나 1409년(태종 9)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그 후 관리를 하지 않아 정릉은 왕후의 능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다. 그러던 중 1669년(현종 10) 송시열 등에 의해 본격적인 복구 작업이 이뤄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이용시간 화요일부터 일요일 06:00 ~ 18:30 동절기 (11 ~ 2월) 06:30 ~ 17:30 매표는 관람 종료 1시간 전까지 가능가격 1000소인 500할인정보 6세 이하, 65세 이상, 장애인, 국가유공자 무료 20인 이상 대인 단체 800원 10인 이상 소인 단체 400원 한국어 안내 정릉 체험학습 프로그램 (비정기 - 가족백일장, 세계문화유산 왕릉 릴레이 탐방 등) 그 외 홈페이지를 통한 행사 공지 첫째 주, 셋째 주 토요일 - 조선왕릉 상설문화재 해설 정릉 정자각, 봉분외국인참여프로그램 세계문화유산 왕릉 릴레이 탐방 프로그램 외유적지 지정 사적 제208호지정 내역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208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서울 도성 안 취현방 북원(聚賢坊北原:현재의 貞洞)에 있다가 1409년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였다. 태조는 고려의 풍습대로 향리와 서울에 각각 부인을 두고 있었는데 강씨는 바로 서울에 있는 부인이었다. 고향에 둔 부인 한씨(韓氏)는 태조 등극 전에 죽었고, 등극과 더불어 왕후의 자리에 앉은 것은 현비(顯妃) 강씨로 방번(芳蕃)·방석(芳碩) 두 형제를 낳았다. 1396년(태조 5) 현비가 죽자 태조는 정성을 다해 능을 조영하고 능 동쪽에 흥천사(興天寺)를 세워 재궁(齋宮)을 삼고 법석(法席)을 마련했으며, 대궐에서 정릉의 아침재 올리는 종소리를 듣고서야 수라를 들었다고 한다. 그 뒤 왕자의 난으로 현비 소생의 두 왕자가 죽자, 태조는 정사에 뜻을 잃고 태상당으로 있으면서 자주 정릉에 가서 불공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 후 능역의 광대함이 의정부에서 논란이 되었고 태조가 죽은 뒤로는 정릉에 대한 박대가 노골화하였다가, 태종의 뜻대로 도성 밖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였다.소요시간60관리기관 문화재청 정릉관리소관광팁 정릉 숲 해설 체험학습 프로그램 아름다운 숲과 문화재를 함께 생각하는 체험학습 프로그램. 정릉 숲 고유의 특성을 살린 숲 이야기와 생태놀이 등을 진행한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낮 12시까지 운영하며 정릉 종합안내판 앞에서 출발한다. 정릉 숲 해설 체험학습 프로그램 흥천사 정릉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흥천사가 있다. 흥천사는 태조가 정릉을 정동에 처음 지을 때 신덕왕후의 원찰로 같이 지은 곳이다. 태종 때 능이 현 위치로 천장되면서 함께 옮겨 와 이름이 신흥사로 바뀌었다. 지금은 다시 흥천사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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