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독재 유산 정수장학회 해체와 독립 정론 부산일보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22일 오후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대회의실에서 열린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가?' 시민사회, 유족 기자회견에서 정수장학회 전신인 부일장학회 설립자인 고(故) 김지태 씨의 아들 김영철 씨가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정수장학회 문제 12문 12답



정수장학회 문제에 박근혜 후보가 ‘정면돌파’의 방식을 택한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본다. 그저 “잘못했다, 유족들에게 돌려주겠다”고 하면, 박근혜에게 그럴 권리조차 없지만, 국민 대다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언가 구린 구석이 있는 모양’이라 생각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참에 정수장학회의 전신이라고 주장하는 부일장학회의 창립자 김지태가 어떠한 사람인지 정확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1. 김지태는 친일파인가?



김지태는 동양척식회사에서 일했던 사람이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친일파라고 단죄할 수는 없다. 당시에 동양척식회사는 상위권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취직하고 싶어하는 ‘1순위 직장’이었고, 우등생이었던 김지태는 교장 추천을 받아 그곳에 들어갔다.



어린 학생이 무엇을 알아서 친일을 했겠나. 그것이 친일이라면 일제시대에 항일운동을 하지 않은 모든 청년들은 친일파인 꼴이 된다. 동양척식회사에 들어가고 싶었어도 못 들어간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은 마음속 친일을 한 것인데, 능력이 되지 않아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훗날 안도의 한숨을 쉬고, 능력이 되어 그곳에 들어갔던 사람은 나중에야 친일파로 지탄받는다면, 그런 억울한 세상이 어디 있는가.



2. 김지태는 어떻게 부를 축적하였나?



“서울에는 이병철(삼성그룹 창립자), 부산에는 김지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김지태는 경남지역 최고의 갑부였다. 그는 동양척식회사에 취직했다가 폐결핵에 걸려 5년 만에 퇴사했고, 그때에 퇴직금조로 불하받은 2만 평의 땅을 밑천삼아 견직 사업 등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3. 김지태가 군사정권의 표적이 된 이유는?



김지태는 재혼을 했는데, 새로 얻은 부인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었다. 그 부인이 다이아몬드를 자랑하고 다녔고, 본처의 동생이 그에 격노하여 군사정권에 고발을 하면서 조사가 시작되었다.



조사 결과 다이아몬드는 독일에서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서 가지고 들어온 것으로 밝혀졌는데, 현재 김지태의 유족들은 “손가락에 끼고 들어왔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손가락에 끼고 들어오든 발목에 차고 들어오든 해외에서 구입한 사치품은 무조건 신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요즘엔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이치다. 게다가 그 반지는 당시 시가로 800만환이었는데, 지금으로 따지면 2억8천만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그런 반지를 끼고 들어온 것이 밀수가 아니면 무엇인가.



4. 군사정권이 김지태에게 재산을 내놓으라고 했나?



다이아반지 사건이 터졌을 때 김지태는 일본에 있었고, 회사 직원들과 부인이 구속되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부산일보의 편집장이 박정희의 동창생이라는 점을 이용해 군사정권과 ‘딜’을 시도했다.



요컨대,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 용서받으라는 제안은 군사정권이 먼저 한 것이 아니라 김지태 자신이 내놓은 타협안이고, 그에 따라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 문화방송 지분을 내어놓았다. 그후로 김지태는 부산 지역 최고 갑부로 다시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부산상공회의소 회장까지 지냈다.



5.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 문화방송의 재산적 가치는?



1962년 당시 부일장학회는 법인도 아니었고, 김지태가 임의로 만든 단체였다. 장학회의 재산이라고 내놓은 10만평의 토지도 알고 보니 공문서를 위조하여 불하받은 적산(과거 일제가 소유했던 토지)이었다. 부산일보와 문화방송도 만성 적자 상태였다. 부산일보의 경우에는 부채가 자산보다 2배나 높았다.



군사정권이 언론장악을 노리고 부산일보와 문화방송을 강탈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당시 부산일보는 지방 신문의 하나에 불과했고, 문화방송은 지금은 3대 TV방송사 가운데 하나이지만 그때에는 작은 라디오 방송국이었다.



결국 군사정권이 김지태에게 속은 것이나 다름없다. 김지태는 적자 계열사를 넘겨주고 오히려 부담을 덜어내면서 자신과 부인까지 풀려났다. 이런 것을 두고 꿩 먹고 알 먹고!



6. 김지태는 강압에 의해 재산을 넘겼나?



돈으로 죄를 사면받는 자리의 분위기가 화기애애 했을 리는 없다. 당시 김지태는 수갑을 찬 상태로 재산 기증서에 도장을 찍었다고 하는데, 죄인이 수갑을 차고 조사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김지태의 유족들은 “당시 군인들이 권총을 차고 있었다”는 것을 강압의 증거로 꼽는데, 그 당시에 군인들은 권총을 차고 식당에도 드나들었고, 소총을 든 군인들이 대학가에 주둔했을 정도였다.



나중에 법원에서 “부일장학회 헌납은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판결한 것은 김지태가 “강탈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법리적인 해석으로 보아야 한다. 정치적인 해석과 법리적인 해석은 다르다. (게다가 ‘강압 행위’에 대한 공소 시효도 이미 지나버린 상태다.)



7. 김지태는 왜 돌연 말을 바꿨나?



1970년대 초만 하더라도 김지태는 “나는 재산을 국가에 헌납했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언론 인터뷰 등에 기록이 남아있다. 그런데 인생 말년에 그는 자서전을 냈는데, 그때부터 ‘재산 강탈설’을 펴기 시작했다. 자서전을 내던 시기가 1976년이었다. 정국이 요동치고 있었고, 자기 인생을 뭔가 더욱 드라마틱하게 서술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서전을 펴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만한 욕심이다. 김지태는 1982년 고인이 됐다.



8. 김지태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관계는?



노무현 대통령은 중학교 재학시절에 부일장학회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녔다. “그(김지태)가 없었으면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부일장학회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나중에 김지태의 유족들이 국가에 빼앗긴 재산을 반환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할 때에도 노무현이 변호를 해주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과거사 정리위원회>를 통하여 이 문제를 다루었다.



9.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 결과는?



노무현 참여정부 당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압도적 다수가 좌파 성향이었음에도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설령 부일장학회 헌납 과정에 강압이 있었다 하더라고, 그것을 이유로 지금은 성격과 규모가 완전하게 달라진 정수장학회를 연관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A씨가 국가에 기증한(혹은 빼앗긴) 컴퓨터를 이용하여 ‘안철수연구소’라는 회사를 만들어놓았는데, 50년전 구닥다리 컴퓨터를 근거로 오늘의 안철수연구소를 내놓으라는 격 아닌가.



10. 정수장학회는 박근혜의 것인가?



김지태가 내놓은 부일장학회 토지와 다른 독지가들의 지원금을 모아서 만들어진 것이 ‘5.16장학회’다. 군사쿠데타의 날짜를 따서 지었다. 1982년에 전두환 대통령이 박정희의 ‘정’과 육영수의 ‘수’를 따서 이름을 바꿔주었다고 한다. 즉, 정수장학회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박정희 유족의 뜻은 아니었다.



장학회의 설립 배경 때문에 주로 박정희 유족이나 군사정권과 관련되었던 사람들이 이사진을 구성하고 있지만, 현재 정수장학회는 서울교육청의 지도 감독을 받는 공익재단이다. 사회적으로 완전히 환원이 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에 문제가 있었다면 문민통치가 시작된 YS-DJ-노무현 정권 시절에 백 번은 갈아엎었을 것이다. 이런 재단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이미 국민의 소유가 된 재산을 깡패처럼 내놓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11. 민주당이 정수장학회를 정쟁의 수단으로 삼는 이유는?



민주당은 이 문제로 박근혜 후보에게 흠집을 낼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문제는 김지태라는 인물을 까면 깔수록 민주당에게 불리해진다. 국민들이 그 내막을 소상히 알게 되면 역풍을 맞을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도 기자회견의 상당부분을 김지태와 부일장학회의 실체를 밝히는데 할애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식 원칙론이다.



12. 정수장학회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정수장학회 이사진이 스스로 용퇴하면 된다. 그런데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들이 굉장히 고지식한 사람이라서 퇴진을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시각으로는 물러날 법적인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리 틀리지 않은 생각이다.



그렇더라도 법리와 정치는 다르다. 특정한 장학회를 정치 논리에 따라 운영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이미 정수장학회 자체가 정쟁의 대상이 되어버렸으니 정수장학회 이사진도 정치 논리에 따라 움직여주는 것이 옳다. 억울한 심정을 갖고 있을 김지태의 유족들을 이사진의 일부로 포함시켜주고, 이사장을 제3의 인물로 교체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현명한 방법이다. 물론, 민주당과 좌파언론은 그 어떤 변화를 모색하더라도 물고 늘어지겠지만!



PS. 이상의 내용은 각종 언론이나 정부기관 보고서를 통하여 이미 공표된 내용이니 김지태 유족들이 사자(死者)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면 그렇게 하기 바란다. (bitdori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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