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미국의 어느 주에서 ‘오바마’라고 이름이 적힌 검정색 인형이 3층짜리 건물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발견돼 난리가 난 적이 있다. 한국에까지 보도가 되었을 정도이니 보통 사건은 아니었다. 백악관 경호실에서 출동하여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내느라 현장 조사를 벌였다.



지난해 할로윈 때는 미국의 어떤 사람이 흑인 인형을 장식품이라며 처마에 매달아 지탄을 받았다. 그때에도 역시 백악관 경호실이 출동했다. 인형의 얼굴이 오바마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현직 대통령을 위해할 의사가 있었던 것인지 확인했고, 그 인형을 매달았던 사람은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론에 맹세(?)를 해야만 했다.



한국에서는 대수롭지 않을 일들이 미국에서는 이렇게 지탄을 받는다. 미국 사람들이 지나치게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 아니면 미국이 어느 순간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독재국가라도 되었단 말인가?



◆ ‘쥐××’에 박수치는 철부지 어른들



우리는 ‘국가원수’라는 표현의 의미를 간과하는 경우가 흔한데, 국가원수는 국가의 최고 지도자이자 대내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주체이다.



물론 정치인을 비판하는 행위는 유권자로서 정당한 권리이고, 대통령도 정치인이니 그 대상에서 성역이 될 수는 없지만, 거기에도 적절한 ‘한도’라는 것이 존재한다. 특히 대통령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행위는 상당히 신중해야 한다. 단순히 지위가 높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국가원수’라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그렇다. 국가원수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행위는 어쩌면 국가 자체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행위이고,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이 ‘오바마 인형’ 문제에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버락 오바마 개인을 모욕하고 위협하는 행위가 아니라 ‘미합중국’이라는 공동체 전체를 공격하고 파괴하려는 행위라고 여기는 것이다.



2008년 한국에서 이른바 ‘촛불시위’ 때에, 일부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까지 거리에 데리고 나와 현직 대통령을 ‘쥐××’라 부르며 조롱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대통령을 욕하는 구호를 외치자 주위 어른들이 “잘한다”고 박수를 쳤다는 기사를 읽고, 그런 내용을 외국인들이 볼까봐 조마조마 하기도 하고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건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독재다, 광기다, 무식이다. 만약 내 자식이 그랬다면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그래서는 안된다고 따끔하게 주의를 주었을 터인데 박수질이라니, 그 ‘어른’들이 한참이나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하던 시기에 나는 노랫말을 쓴 적이 있다. 당시 돌아가는 정국이 너무도 답답하고 한심하여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는 내용의 노랫말을 만들었던 것인데, 어떤 선배가 그것을 보고는 “국가원수를 모독해서는 안된다”고 차분하게 지적해주었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노랫말은 폐기했다. 그 뒤로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할 때에는, 나는 그와 정치적 입장이 많이 다르지만, ‘정치인 노무현’과 ‘국가원수 노무현’을 함께 고려하며 신중을 기하려 노력했다.



◆ 대통령이 존중받는 풍토를 만들어야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대통령을 비판하는 행위는 그 자체가 용기였다. 시인 김지하가 그랬다.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까지 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권위의 사슬이 사라진 - 사라져도 너무 사라진 - 개명천지 21세기에, 뒤늦게(?)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대통령 분탕질’에 나서는 사람들을 볼 때면 때로 한심함마저 느낀다. 조금도 용감해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요새는 “정부가 잘 한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이 용감하게 느껴지는 세상이 되었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어느 민중(?)화가라는 양반이 박근혜 후보가 아버지를 낳는 출산 장면을 ‘예술’이라며 내놓아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것이 예술이라면 진작 내놓지 왜 굳이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둔 시점에야 그려냈을까? 대선에 무언가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정치적인 의도가 분명하였고, 그것은 분명히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내 주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그림을 보면서 혐오감을 느꼈다며, 그러한 그림에 환호하는 세력에게는 표를 주지 않겠다고 똑똑히 말했다.



과연 선거 결과도 그렇게 나왔다. 당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의 신분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우리 사회가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선동꾼들은 이제 자숙을 해야 한다는 교훈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휴대폰 게임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 대상이 누가 되었든, 전현직을 막론하고 국가원수를 함부로 모욕하는 행위는 이제는 근절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직에 한하여 말하자면,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통령이 ‘존중’ 받는 풍토는 국민들이 먼저 만들어주어야 한다. 존경과 사랑은 대통령 자신이 노력할 몫이다. 박근혜 대통령 재임기에 그런 흐뭇한 모습을 보고 싶다. (bitdori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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