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준 前 장관님께.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은 ‘前 장관’이라고 하였는데, 뒤에는 편하게 ‘선생님’이라 칭하겠습니다.



지난 8월에 저는 “민주당은 윤여준을 끌어들여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고, 물론 그 칼럼 때문은 아니겠지만 윤 선생님은 10월에 문재인 캠프에 합류하셨습니다.



엊그제 윤 선생님의 문재인 찬조 연설을 잘 보았습니다. 인터넷에서 화제이더군요. ‘역시 윤여준’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절세의 정치꾼’이라는 감탄사가 흘러나왔습니다. 문재인이 윤 선생님을 끌어들인 것은 최고의 행운이지요.



역시 윤 선생님은 선거의 맥을 제대로 읽고 계셨습니다. 우리 국민들, 싸우고 다투는데에 지쳐있지요. 그런 마당에 찬조 연설자라고 나서서는, “누구는 나쁘고, 누구는 안된다”라는 식으로 연설해서는 기껏 확보한 표나 갉아 먹게 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힐링’을 하듯이, 잔잔하게, 내면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속된 말로 ‘먹힙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책사(策士)답게 윤 선생님은 그것을 잘 알고 계셨고, 이번에도 그 능력을 여실히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20~30대들이 홀딱 넘어갔더군요. 선거의 부정적 이면이 ‘기만(欺瞞)’이라고 한다면, 윤 선생님은 이번에 그 진수를 똑똑히 보여주셨습니다. 배우고(?) 싶은 대목입니다.
















▲ 12일 저녁 방송된 윤여준 민주통합장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의 찬조연설 캡쳐 화면



◆ “윤여준은 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계산은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연초만 하여도 선생님은 안철수 쪽에 기울어 계셨죠. 현재는 새누리당에 가있는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안철수 신당’을 만들고, 그것으로 총선에 도전하여 국회의원 15~20석 규모의 꼬마 정당을 구성하여 캐스팅보트를 쥐는 전략을 갖고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가망이 없고, 그리하여 다음 대선쯤에나 ‘안철수의 시대’를 열어보려고 꿈꾸었던 것이지요.



어쨌든 선생님은 “윤여준이 멘토라면, 나의 멘토는 수천 명에 달한다”라는 안철수의 발언에 ‘팽’ 당하여 물러나셨고, 나중에야 문재인 캠프에 합류하셨습니다. 박근혜 캠프에는 이미 김종인이라는 거목이 들어가 있고, 책사는 둘이 될 수 없기에, 어쩌면 ‘울며 겨자먹기’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문재인 캠프에 들어가신 줄로 압니다.



그런 분이 이번에 TV에 나서, 무언가 대단한 결단을 하신 것처럼, 문재인의 인간성을 돋보이도록 만드는 명연설을 하셨습니다. 역시 윤 선생님다우십니다. ‘윤여준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 문재인은 박근혜의 종속변수 입니까?



그런데 윤 선생님 연설에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문재인 후보에게 물으셨다죠. “국민통합을 한다면서 국립현충원을 참배할 때에 왜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의 묘소를 뺐는가? 통합의 관점에서 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



거기에 문재인 후보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공개하셨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국가폭력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면 참배할 것입니다.”



이 말을 가만히 듣고만 계셨나요? 자기가 전직 국가원수들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 하고 박근혜 후보가 대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자기가 좋으면 하는 것이고 싫으면 안하는 것이지, 거기에 ‘박근혜’라는 이름은 왜 끼어 넣었던 걸까요? 박근혜가 사과해야 전직 국가원수들의 묘소에 참배를 하겠다니, 문재인은 박근혜의 종속변수라도 되는 건가요?



그래, 박정희 묘소를 참배하지 않은 것은 그렇다 칩시다. 이승만은 왜 안한 건가요? 그건 누가 사과해야 하는 건가요? 설마 그것도 박근혜에게 사과하라는 건가요?



저는 이런 엉뚱한 답변을 윤 선생님이 받아들인 것 자체가 믿기지가 않고, 초등학생도 문제점을 파악할 만한 이런 엉뚱한 논리를 TV연설에다 대놓고 했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블랙 코미디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생각해봅시다.



‘A가 B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으면 나도 화해하지 않을 것이다.’ - 문재인 후보의 이런 논리가 과연 ‘통합’의 사고방식인가요? 게다가 A와 B사이에 아무런 법리적인 연관성도 없는데, 그저 누구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과하라’고 강박하는 것 - 이것이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던 사람의 정상적인 사고관인가요?



저는 문재인 후보의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위험하다고 보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사과를 하지 않아도, 자신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 - 그것이 진정한 ‘통합’의 자세 아닐까요?



이런 편협한 사고방식을 준엄하게 꾸짖지는 못할망정, 그런 엉터리 논리를 가만히 듣고만 계셨다니, 스스로 논리의 부정합성을 깨닫지 못하셨던 겁니까? (게다가 박근혜는 여러차례 도의적인 사과의 뜻을 밝혔고, 유신 피해 보상법 등을 통해 실천적인 모습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사과를 하라는 건가요?)



◆ 박근혜를 위해서도 똑같은 연설을 하였겠지요.



윤 선생님이 문재인 캠프에 합류할 때에, 친노(親盧)의 마담격인 강금실 전 장관이 그랬지요. “기술자들에 대한 분노가 인다.”



여기서 ‘기술자’란 ‘선거’ 기술자를 말하는 것이고, 윤 선생님은 바로 그러한 선거 기술자이지요. 강금실 씨는 그때에 “어떤 명분과 전향의 과정 없이 민주당이 그를 덜컥 끌어들였다”고 윤 선생님을 욕했습니다. “정치는 철학과 도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까지 말했습니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처럼 ‘선거 기술자’ 윤여준으로, 윤 선생님은 그렇게 민주당에 ‘특채’되셨습니다.



이번 TV연설에서 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통령 선거 운동을 잘 하는 사람이 있고, 대통령이 되면 잘 할 사람이 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폭소가 터졌습니다. ‘대통령 선거 운동을 잘 하는 사람’이야 바로 윤 선생님 자신이고, 그런 ‘지도’아래 대통령 선거 운동을 잘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문재인 후보 아닙니까? 불과 1년 전만 하여도, 주위의 의견은 물론이고 본인 자신조차도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는 꿈조차 꾸어보지 않았던 사람이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안철수를 등에 업고, 종북(從北) 이정희의 독설을 지원세력 삼아 4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기이한 현상 …… 이거야말로 “대통령 선거 운동 잘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어부지리로, 로또 당첨되듯이, 어느 순간 대박 맞은 여론으로 덜컥 대통령이 되었던 사람이, 그러한 세력이, 이 나라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많이 싸우셨지 않습니까, 그런 얼치기 세력들과……. 그랬던 분이 이제 와서는 “대통령이 ‘되면’ 잘 할 사람”을 운운하시다니, 연세 많으신 어르신에게 감히 할 표현은 아닙니다만, 헛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대통령이 ‘되면’ 잘 할 사람”은 대한민국에 많고도 많습니다. 윤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남의 말 잘 들어주고 겸손한 사람도 대한민국에 많고도 많습니다. 저도 남의 말을 잘 들어줍니다. 그러면 모두 대통령 되어야 하는 건가요?



윤 선생님이 더욱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인물은 ‘대통령이 되면 잘 할 사람’이 아니라, ‘대통령이 될 준비를 오랫동안 해온 사람’입니다. 이제 갓 정치 초년생이고,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회의원 몇 개월 하였던 경력이 전부인 사람이 과연 국정운영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지, 양심을 걸고 대답해 보시지요.



◆ 어둠의 세력과 잘 어울려 보시길



아마도 윤 선생님이 박근혜 캠프에 계셨다면, 지금까지 제가 말했던 것과 똑같은 논리로 선생님은 박근혜를 위한 TV연설을 하셨겠지요. 네, 그래서 사람들이 윤 선생님을 ‘선거 기술자’라고 부르는 겁니다. 영혼을 팔아버리고, 그저 자리 하나 내어준다면 어디든지 기웃거리는! 굽실거리는! 하루아침에 변신해버리는!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이번 연설 잘 하셨습니다. 잘 속이셨습니다. 그걸로 어차피 표심이 굳어 있던 20~30대들은 더욱 굳게 결의를 다질 것이고, 그들이 부모 세대들을 설득하겠지요. 한 1~2만 표 정도는 움직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에 역반응도 만만찮을 것입니다. 이미 그런 걸 다 계산해보셨을 줄로 압니다만…….



아무튼 프로니까 잘 아시겠지만, 결과로써 승부를 내어 보십시다. 이도저도 안되니까 막판에 온갖 마타도어를 일삼지 않은 구태 정치세력이 이기는지, 어찌되었든 정도(正道)로 나아가는 세력이 이기는지…… 역사의 정의가 선생님을 심판할 것이라 믿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박근혜 아이패드, 박근혜 굿판, 박근혜 숨겨놓은 아들, 이제는 박근혜 신천지까지, 말도 안되는 흑색선전으로 ‘한탕’을 해보려는 세력들과 잘 어울려 보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의 ‘기술자’ 경력에 화려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선생님의 가정에도 축복을 빕니다. (bitdori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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