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영 거주지
이회영은 1920년경 베이징 둥청구 후고루원 골목(后鼓楼苑胡同, 사진)에서 거주했다. 이곳은 베이징역에서 4.8km 거리에 있으며 당시 이회영이 살았던 집은 찾을 수 없고 골목만 확인된다. 골목에는 당시의 건물로 보이는 가옥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후고루원 골목은 1919년 3월 베이징에 돌아온 이회영이 국내에서 건너온 식구들과 함께 보금자리를 꾸민 곳이다. 당시 상하이에서 이회영과 같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관여했던 이동녕, 조완구, 이광, 조성환, 박용만, 김규식, 김순칠 등도 베이징으로 모여들었다. 이때 이회영의 집에는 이시영, 이동녕, 조완구, 심훈 등이 기숙하기도 했다.
당시 국내의 독립운동 인사들이 베이징에 오면 반드시 이회영을 찾아왔을 뿐 아니라 기거하는 경우도 많았다. 베이징의 인사들 뿐 아니라 베이징을 찾는 독립운동지사들로 언제나 붐비던 이회영의 집은 당시 베이징지역 독립운동계의 지도부나 다름없었다. 이회영 집에는 매일같이 적게는 10명, 많을 때는 3~40명씩 찾아왔다고 한다. 이회영은 그들에게 점심과 저녁을 대접하곤 하였다.
그러나 밀려오는 독립운동지사들을 접대하기에 집이 너무 협소하여 보다 넓은 이안정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후고루원호동 골목에는 김달하가 살았고, 길 건너 500m 거리에 신채호가 머물렀던 관음사가 위치하고 있다.